부동산 실험실
스물한 개의 장에서 집값과 전세의 부품을 하나씩 떼어 보았다. 입지와 금리, 공급의 시차, 전세의 구조, 계약과 권리, 대출 한도와 DSR, 레버리지, 청약, 세금, 사느냐 빌리느냐. 이 장은 그 부품을 한 가구 위에 다시 조립한다. 소득과 생활비, 예금과 보증금, 사는 지역과 목표 집값, 무주택 기간과 부양가족을 넣으면 다섯 갈래의 주거 경로(전세 계속, 월세, 지금 매수, 몇 년 뒤 매수, 청약 당첨)가 30년 동안 어떤 순자산을 남기는지, 해마다 주거비로 얼마가 나가는지, 금리와 집값이 흔들리면 그 결과가 얼마나 퍼지는지, 어떤 조건에서 경로가 무너지는지가 숫자로 나온다. 기본값은 책 전체를 함께 걸어온 하늘네이고, 숫자 몇 개만 바꾸면 곧바로 우리 집이 된다. 이 실험실은 미래를 맞히는 기계가 아니다. "이 조건이라면 이렇게 된다"를 재는 자다.
- 소득·자산·지역·가족 계획을 넣어 지금 빌릴 수 있는 돈(DSR·LTV·금액 상한)과 청약 가점을 계산한다.
- 금리 곡선의 점을 직접 끌어 30년 금리 시나리오를 만들고, 집값·전세가 상승률과 함께 다섯 경로의 순자산을 비교한다.
- 경로마다 해마다 나가는 주거비(이자, 월세, 보유세, 수선비, 거래 비용)와 지금 보증금의 회수 위험을 확인한다.
- 몬테카를로로 집값과 금리의 불확실성을 300번 돌려 경로마다 결과가 얼마나 퍼지는지 본다.
- 금리 급등·집값 하락·소득 감소가 겹칠 때 각 경로가 어디서 무너지는지 지도로 찾고, 결과를 판단에 쓰는 법과 한계를 정리한다.
실험실의 순서
주거 경로를 한 번에 계산하는 공식은 없다. 이 장은 여덟 단계로 나눈다. 가구를 넣고, 지금 빌릴 수 있는 돈을 확인하고, 금리와 집값의 길을 그린다. 그 위에서 다섯 경로를 30년 동안 돌리고, 해마다의 주거비와 지금 보증금의 위험을 본다. 마지막으로 미래를 수백 번 흔들어 결과의 폭을 재고, 경로가 무너지는 조건을 찾는다. 모든 시뮬레이터는 같은 가구와 같은 시나리오를 공유한다. 첫 시뮬레이터에서 예금을 바꾸면 아래 일곱 개가 모두 따라 바뀐다.
숫자는 모두 이 책의 계산 엔진(RE)과 이 장 안의 30년 경로 모형이 만든다. 대출 한도와 DSR(RE.maxLoan, RE.dsr), 취득세와 보유세(RE.acqTax, RE.holdingTax), 중개보수(RE.brokerage), 보증금 회수(RE.jeonseRisk), 청약 가점(RE.subscriptionScore)은 앞 장들과 같은 함수다. 그 함수들을 해마다 이어 붙이는 일, 곧 예금이 얼마나 쌓이고 대출이 얼마나 줄고 전세 재계약 때 보증금을 얼마나 더 내는지는 이 장의 스크립트가 계산한다. 그래서 이 장의 결과는 모두 "이 책의 모델로 계산하면"이라는 단서를 단다.
우리 집 입력
먼저 가구를 넣는다. 위쪽 프리셋으로 출발점을 고른 뒤 숫자를 바꾼다. '하늘네'는 RE.CASE에서 가져온 값이다. 연소득 9,200만원(하늘 4,800만 + 재원 4,400만), 월 실수령 650만원, 보증금 4억원 중 전세대출 2억원, 경기 B시(수도권 비규제). 예금은 지금의 8,000만원에 전세 만기(2027년 4월)까지 6개월 동안 모을 돈을 더한 약 9,600만원으로 넣었다(1장의 계산). 이 장의 '0년'은 결정하는 시점이고, 하늘네에게는 2027년 4월이다. 나머지 넷은 처지가 전혀 다른 가상의 가구다. 수도권 빌라에 전세로 사는 28세 사회초년생, 은퇴를 5년 앞둔 서울의 50대 부부, 지방 D시의 맞벌이 4인 가족, 서울 강남권에 전세로 사는 맞벌이 고소득 가구. 서울 두 가구의 숫자는 2026년 시세에 맞췄다. 50대 부부의 목표 집값 10억원은 서울 강북 14개구 아파트 중위 매매가격(10억 167만원, 2026년 8월 KB)에, 보증금 6억원은 서울 아파트 중위 전세가격(약 6억원, 2026년 4월 KB)에 맞춘 값이다. 강남권 가구의 목표 집값 40억원은 2026년 강남권 84㎡ 40억원대 거래를 본떴고, 지금 사는 집의 전세가율은 약 42%로 서울 고가 지역의 40% 안팎(2026년 1월 KB)에 맞췄다. 서울 아파트 평균 매매가격은 16억원대, 평균 전세가격은 6억 8,000만원대다(KB).
세 가지를 조심해서 넣는다. 첫째, 월 생활비에는 주거비를 넣지 않는다. 전세대출 이자, 월세, 주담대 상환은 경로마다 다르기 때문에 모형이 따로 계산한다. 하늘네의 생활비 400만원에는 전세대출 이자 약 63만원(2억원 × 3.8% ÷ 12)이 들어 있으므로, 여기에는 약 337만원을 넣었다. 둘째, 연소득은 세금을 떼기 전 금액이다. 은행은 이 숫자로 DSR을 계산한다. 셋째, 은퇴까지 남은 해가 지나면 실수령과 연소득이 지금의 45%(공적연금·퇴직연금을 합친 교육용 어림값)로 줄어든다고 본다. 30년 경로에서 가장 크게 꺾이는 곳이 여기다.
우리 집 입력
RE.subscriptionScore로 계산한다.)그림의 네 줄은 이 실험실이 가구를 보는 방식이다. 맨 위는 지금의 대차대조표다. 보증금은 자산이지만 그중 전세대출은 빚이므로, 순자산은 '보증금 중 자기 돈 + 예금'이다. 둘째 줄은 한 달 돈의 흐름으로, 실수령에서 생활비와 주거비를 빼고 남는 저축이 30년 경로의 연료다. 셋째 줄은 목표 집을 지금 산다고 할 때의 자금 구조다. 집값과 거래 비용을 합친 금액 가운데 자기 돈으로 낼 몫(비상금을 남기고)과 빌려야 할 몫이 갈리고, 세로선은 규제가 허락하는 최대 대출이다. 빌려야 할 몫이 이 선을 넘으면 그 부분이 붉게 칠해진다. 맨 아래는 청약 가점이다. 하늘네의 36점(무주택 10 + 부양가족 15 + 통장 11)은 11장에서 본 것처럼 인기 단지의 가점제 커트라인과 거리가 멀다. 이 숫자가 아래 '청약 당첨 가정' 경로를 읽을 때의 단서가 된다.
얼마를 빌릴 수 있나: 세 개의 한도
집을 사는 경로는 모두 대출 한도라는 문을 지나야 한다. 9장에서 본 것처럼 은행이 빌려주는 주택담보대출은 세 한도 중 가장 작은 값이다. 소득으로 정해지는 DSR(Debt Service Ratio,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 한도는 모든 대출의 한 해 원리금이 연소득의 40%(은행 기준)를 넘지 않게 하는 선이다. 집값으로 정해지는 LTV(Loan-to-Value, 담보인정비율) 한도는 집값의 일정 비율, 그리고 수도권·규제지역의 주담대 금액 상한이 있다. 2026년 기준 이 책의 엔진은 지역을 셋으로 나눈다.
| 지역 유형 | LTV | 스트레스 가산금리(DSR 계산용) | 금액 상한 |
|---|---|---|---|
| 서울 규제지역(투기과열지구·조정대상지역·토지거래허가구역) | 무주택 40%, 생애최초 70% | +3.0%p | 시가 15억 이하 6억, 25억 이하 4억, 초과 2억 |
| 수도권 비규제(예: 경기 B시) | 70% | +3.0%p | 6억 |
| 지방 | 70% | +0.75%p | 없음 |
스트레스 DSR(Stressed DSR)은 앞으로 금리가 오를 수 있다고 보고, DSR을 계산할 때만 실제 금리에 가산금리를 더하는 제도다. 실제로 내는 이자는 그대로지만 한도는 그만큼 줄어든다. 금융위원회의 6.27 대책(2025-06-28)과 10.15 대책(2025-10-16 시행)으로 수도권·규제지역의 주담대 상한과 가산금리 하한이 지금의 모습이 되었다(지방 주담대의 가산 유예는 2026년 말까지로 알려졌고, 그 뒤는 확인 필요). 규제지역의 다주택자 구입, 정책대출의 소득 요건, 주기형·혼합형 금리에 대한 가산 축소 같은 세부 규칙은 넣지 않았다.
아래 시뮬레이터는 위에서 넣은 가구로 세 한도를 나란히 그린다. 아래쪽 집값 손잡이를 끌어 목표 집값을 바꾸고(위 입력과 연결되어 있다), 금리를 올려 본다. 이 금리는 다음 절 금리 곡선의 첫 점이기도 하다.
대출 한도와 DSR 게이지
한도를 볼 때 두 가지를 기억한다. 하나, 한도는 최대치이지 권장치가 아니다. DSR 40%는 세전 소득 기준이라 실수령으로 따지면 상환액이 월급의 절반 가까이가 될 수 있다. 둘, 한도는 해마다 바뀐다. 금리, 소득, 규제가 바뀌면 같은 집에 대한 한도가 달라진다. 그래서 아래의 'N년 뒤 매수'와 '청약 당첨' 경로는 그 해의 소득과 금리, 그 해의 집값으로 한도를 다시 계산한다. 몇 년을 기다리는 동안 집값이 오르고 금리가 오르면, 모은 돈보다 한도가 더 빨리 줄어들 수도 있다.
- 소득 증빙: 근로소득 원천징수영수증(부부 각자), 최근 급여명세서. DSR은 이 서류의 세전 소득으로 계산한다. 맞벌이는 합산 여부를 확인한다.
- 기존 대출 목록: 전세대출, 신용대출, 마이너스통장 한도, 자동차 할부. 마이너스통장은 쓰지 않아도 한도 전체가 DSR에 잡힐 수 있으니 상담 전에 정리할지 묻는다.
- 금리 유형과 재설정 주기: 변동, 혼합(몇 년 고정 뒤 변동), 주기형(몇 년마다 재설정). 스트레스 가산금리가 유형에 따라 다르게 붙는지 확인한다.
- 중도상환수수료와 거치 기간: 몇 년 안에 갚으면 수수료가 붙는지, 이자만 내는 기간이 있는지.
- 잔금일 기준의 한도: 한도는 계약일이 아니라 대출 실행일의 규제와 금리로 정해진다. 계약과 잔금 사이에 규제가 바뀐 사례가 있었으므로, 잔금일에 한도가 줄면 어떻게 할지(예금, 일정 조정)를 미리 정한다.
금리와 집값의 길을 그린다
30년 경로를 계산하려면 30년 동안의 금리와 집값이 필요하다. 그것을 아는 사람은 없다. 그래서 실험실은 미래를 맞히는 대신 시나리오(Scenario)를 직접 그리게 한다. 시나리오는 "만약 금리가 이렇게 움직이고 집값이 이만큼 오른다면"이라는 가정의 묶음이다. 아래 그래프의 위쪽은 주담대 금리의 길이다. 일곱 개의 점을 위아래로 끌어 모양을 바꾼다. 점 사이는 직선으로 잇는다. 오른쪽 버튼은 대표적인 네 모양을 불러온다. 아래쪽은 그 시나리오에서 목표 집의 시세와 지금 집의 전세 시세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보여 준다.
금리 곡선 끌기와 집값·전세가 시나리오
이 시나리오의 숫자 둘은 이 책이 말해 온 집값의 다섯 힘을 압축한 것이다. 집값 상승률 한 칸에는 입지와 소득의 장기 추세(2장), 공급의 파도(4장), 기대와 심리(17장)가 함께 들어 있다. 금리 곡선은 금리라는 힘을 따로 뗀 것이고, 지역 유형은 대출 규제라는 힘을 대신한다. 결정론적인 경로 비교에서는 금리와 집값을 따로 움직이지만, 뒤의 몬테카를로에서는 둘을 묶는다. 금리가 1%p 오른 해에는 그 해 집값 상승률을 2%p 깎는다. 금리가 오르면 같은 임대료의 값이 내려가고(3장), 빌릴 수 있는 돈이 줄어드는(위 시뮬레이터) 두 경로를 한 숫자로 흉내 낸 교육용 가정이다. 그래서 몬테카를로에서 집값이 크게 빠진 미래를 골라 보면, 그 하락이 어느 힘에서 왔는지를 금리 쪽과 나머지 쪽으로 나눠 볼 수 있다.
다섯 갈래, 30년
이제 같은 가구, 같은 시나리오 위에서 다섯 경로를 돌린다. 각 경로는 아래 그림처럼 결정 시점(0년)에서 갈라진다.
모든 경로는 같은 규칙으로 한 해를 계산한다. 실수령에서 생활비와 그 경로의 주거비를 빼면 그 해의 저축이고, 저축은 예금에 더해져 예금·투자 수익률로 불어난다. 예금이 마이너스가 되면 생활비와 상환을 빚으로 메우는 상태로 보고, 그 빚에는 그해 금리 + 2%p의 이자를 물린다. 경로를 비교하는 잣대는 순자산이다.
아래 시뮬레이터의 선 하나하나가 한 경로의 순자산이다. 오른쪽에서 경로를 켜고 끄고, 'N년 뒤'와 '청약 당첨 해'를 바꾼다. 그래프 아래쪽 손잡이를 끌면 그 해의 경로별 숫자가 아래에 나온다. 맨 아래 상자는 각 경로가 이 시나리오에서 어디가 아픈지 적는다.
30년 순자산 경로 비교
기본 시나리오에서 하늘네의 다섯 선은 처음 10년 동안 거의 겹친다. 사는 경로는 첫해에 취득세·중개보수·이사비 약 1,020만원을 내고 이자와 보유세, 수선비를 감당하는 대신 집값 상승분을 갖는다. 전세 경로는 2억원 전세대출 이자만 내고 남는 돈을 예금으로 굴린다. 집값 상승률 2%와 예금 수익률 3%, 주담대 금리 4%가 맞물리면 두 쪽이 비슷해진다. 30년 뒤에는 매수 쪽이 약 20억원, 전세 쪽이 약 18억 7,000만원으로 벌어지는데, 대출 원금을 다 갚은 뒤 집값 상승분이 온전히 쌓이기 때문이다. 청약 당첨 가정이 가장 높은 것은 시세의 80%에 산다는 가정이 그대로 순자산이 되기 때문이고, 그 가정 자체가 하늘네의 가점(36점)으로는 쉽지 않다는 것을 잊으면 안 된다. 월세 경로가 가장 낮은 것은 이 시나리오에서 전환율(5%)이 예금 수익률(3%)보다 높아, 보증금을 빼서 굴리는 것보다 월세로 나가는 돈이 크기 때문이다.
이 차이는 시나리오를 조금만 바꿔도 뒤집힌다. 집값 상승률을 0%로 내리면 매수 경로가 30년 내내 전세보다 아래에 있다. 예금 수익률을 5%로 올리면 30년 뒤 전세가 매수를 앞서고 월세도 매수에 바짝 따라붙는다. 보증금을 빼서 굴리는 돈의 수익률이 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그래프에서 읽어야 할 것은 "어느 선이 위인가"보다 "어떤 가정에서 순서가 바뀌는가"다. 그리고 순자산이 같아도 그 내용은 다르다. 매수 경로의 순자산은 대부분 집에 묶여 있어 팔기 전에는 쓸 수 없고, 전세 경로의 순자산은 예금과 보증금이라 꺼내기 쉽다. '예금·투자' 보기로 바꾸면 그 차이가 보인다.
해마다 나가는 주거비
순자산 선은 30년을 한 줄로 압축한다. 하지만 가계가 실제로 겪는 것은 해마다의 현금이다. 아래 막대는 고른 경로가 해마다 주거비로 내보내는 돈을 항목별로 쌓은 것이다. 이자(주담대 또는 전세대출), 월세, 보유세(재산세·종합부동산세, RE.holdingTax), 수선·관리비(집값의 0.5%), 그리고 거래·이사 비용(매수 때의 취득세·중개보수·법무비·이사비, 전세·월세 재계약 4년마다의 중개보수·이사비)이다. 원금 상환은 빚을 줄이는 저축이라 여기 넣지 않았다. 막대를 누르면 그 해의 숫자가 나온다.
연도별 주거비
같은 30년인데 주거비가 나가는 모양이 경로마다 다르다. 매수 경로는 처음이 가장 무겁고 갈수록 가벼워진다. 이자는 잔액에 붙으므로 원금이 줄수록 줄고, 30년이 지나면 보유세와 수선비만 남는다. 전세와 월세는 처음에 가볍고 시간이 갈수록 무거워진다. 전세가와 월세가 오르기 때문이다. 1장에서 말한 '집 한 채는 주거비를 고정하는 장치'라는 관점이 이 모양이다. 반대로 집을 산 가구는 처음 몇 해의 무게를 견뎌야 한다. 그 몇 해에 금리가 오르거나 소득이 끊기면 경로가 무너진다. 그 조건은 이 장의 마지막 시뮬레이터에서 찾는다.
지금 보증금은 안전한가
전세 계속, 월세, N년 뒤 매수, 청약 대기 경로는 모두 한동안 남의 집에 보증금을 맡긴다. 그 보증금은 집주인이 돌려줄 수 있을 때만 자산이다. 5장과 7장에서 본 것처럼 집주인이 돌려주지 못해 집이 경매로 넘어가면, 보증금은 낙찰가에서 경매 비용과 나보다 앞선 채권(근저당 등)을 뺀 만큼만 돌아온다. 아래 그래프의 가로축은 집값 하락률, 세로축은 보증금 회수율이다(RE.jeonseRisk). 손잡이를 끌어 하락률을 고르고, 지금 집의 시세와 선순위 채권, 낙찰가율을 바꾼다. 시세와 선순위 채권은 위 경로 계산의 '보증금 위험' 경고에도 쓰인다.
보증금 위험: 집값이 빠지면 얼마가 돌아오나
보증금의 위험은 경로 비교 그래프에 잘 드러나지 않는다. 경매는 드문 일이고, 대부분의 집주인은 보증금을 돌려준다. 그래서 모형은 이 위험을 순자산에서 빼지 않고 경고로만 띄운다. 하지만 하나의 사건이 순자산의 절반을 지울 수 있는 위험은 평균으로 다룰 수 없다. 이 위험을 줄이는 방법은 숫자로 분명하다. 전세가율이 낮은 집을 고르고, 선순위 채권을 확인하고, 전입신고와 확정일자로 순위를 확보하고, 전세보증금반환보증에 가입한다(7장). 보증에 가입했다면 위 그래프의 손실은 보증기관이 먼저 갚고 집주인에게 받아 낸다. 집주인 쪽에서 보면 같은 그래프가 '역전세의 깊이'다. 남궁현 같은 갭투자자에게 집값 하락은 보증금을 돌려줄 돈이 모자라는 문제로 나타난다(5장).
300번의 미래
지금까지의 경로는 시나리오 하나, 곧 미래 하나다. 실제 미래는 해마다 집값과 금리가 예상과 다르게 흔들린다. 몬테카를로 시뮬레이션(Monte Carlo simulation)은 이 흔들림을 무작위로 뽑아 같은 계산을 수백 번 되풀이하고, 결과가 어떻게 퍼지는지 보는 방법이다. 아래에서는 300개의 미래를 뽑는다. 해마다 집값 상승률은 시나리오 값 주위로 '집값 변동성'만큼 흔들리고, 금리는 시나리오 곡선 위아래로 '금리 변동성'만큼 흔들리되 한번 오른 금리는 몇 해에 걸쳐 천천히 돌아온다. 금리가 1%p 오른 해에는 집값 상승률이 2%p 깎인다. 다섯 경로는 같은 300개의 미래를 겪는다. 그래서 경로 사이의 차이는 순전히 선택의 차이다.
몬테카를로: 300번 돌린 순자산의 분포
몬테카를로가 보여 주는 것은 두 가지다. 첫째, 평균이나 중앙값만으로는 경로를 고를 수 없다. 하늘네의 지금 매수와 전세 계속은 10년 뒤 중앙값이 비슷하지만, 매수는 위로도 아래로도 크게 퍼진다. 집 한 채에 순자산의 대부분을 걸고 대출로 레버리지를 걸었기 때문이다(10장). 둘째, 기간이 길어지면 확률이 바뀐다. 이 책의 모델로 계산하면 하늘네의 지금 매수가 전세 계속보다 순자산이 많은 미래는 10년 뒤에 약 39%, 30년 뒤에 약 52%다. 대출을 갚아 가는 동안 집값 상승분이 쌓이고, 전세 쪽은 재계약 때마다 오른 보증금을 감당해야 하기 때문이다. 결론이 아니라 성질이다. 집값 상승률을 1%로 낮추거나 예금 수익률을 4%로 올리면 이 비율은 크게 달라진다.
무너지는 조건
몬테카를로는 '그럴듯한' 미래들을 고르게 뽑는다. 하지만 가계를 무너뜨리는 것은 대개 드물고 나쁜 미래, 그것도 여러 나쁜 일이 한꺼번에 겹치는 미래다. 아래 지도는 그 미래를 일부러 만든다. 가로축은 금리 충격으로, 1년째부터 6년 동안 시나리오 금리 위에 얹혔다가 3년에 걸쳐 돌아온다. 세로축은 처음 3년 동안의 집값 변화이고, 그 뒤로는 시나리오의 상승률로 돌아간다. 슬라이더로 처음 3년 동안의 소득 감소(한 사람의 휴직이나 실직)를 더한다. 칸 하나하나가 그 조건에서 고른 경로를 30년 돌린 결과이고, 색은 그 경로가 겪는 가장 나쁜 일이다. 점을 끌어 칸을 고른다.
- 예금 바닥(진한 빨강): 30년 중 어느 해에 예금이 마이너스가 된다. 생활비와 상환을 빚으로 메우기 시작한다는 뜻이다.
- 깡통·보증금 위험(옅은 빨강): 산 집의 시세가 주담대 잔액보다 낮아지거나(깡통주택, 팔아도 빚을 다 못 갚는 집), 세 들어 사는 집의 시세가 보증금을 다 돌려주지 못할 만큼 내려간다.
- 상환 부담(노랑): 주담대 원리금이 어느 해에 실수령의 40%를 넘는다. 무너지지는 않았지만 다른 지출을 크게 줄여야 버틴다.
- 살 수 없음(빗금): 사는 해의 대출 한도가 모자라 그 경로를 시작하지 못한다.
스트레스 지도: 금리 급등 × 집값 하락 × 소득 감소
지도는 경로마다 무너지는 방향이 다르다는 것을 보여 준다. 대출로 산 경로는 현금 흐름에서 무너진다. 상환액은 소득이 줄어도 줄지 않고, 집은 팔기 전에는 생활비가 되지 않는다. 집값 하락 자체는 팔지 않는 한 장부상의 손실이지만, 소득 충격과 겹쳐 팔아야 하는 순간이 오면 손실이 확정된다. 전세 경로는 보증금에서 무너진다. 집값이 크게 빠지면 내 돈이 남의 집 시세에 묶여 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월세 경로는 상대적으로 단단하지만 순자산이 가장 느리게 쌓이고, 전세가와 금리가 오르는 만큼 월세가 오른다. 청약 경로는 당첨 뒤 잔금에서 무너질 수 있다. 3년 동안 금리가 오르거나 소득이 줄면 잔금 대출 한도가 모자라고, 이 모형에서는 계약금을 잃는다.
실험 과제
실험실을 쓰는 가장 좋은 방법은 질문을 하나 정하고 숫자를 하나씩만 바꾸는 것이다. 아래 과제는 하늘네 기본값에서 출발한다. 각 과제 끝의 질문에 숫자로 답해 본다.
- 손익분기 집값 상승률 찾기시나리오의 집값 상승률을 0.5%씩 바꾸며 30년 뒤 '지금 매수'와 '전세 계속'의 순자산이 같아지는 상승률을 찾는다(하늘네 기본값에서는 1.5% 언저리다). 그 값이 예금 수익률(3%)보다 낮은 이유는 무엇인가. 집값 상승은 집 전체에 붙고 예금 수익은 내 돈에만 붙는다는 레버리지(10장)로 설명해 본다. 예금 수익률을 4%로 올리면 손익분기는 어디로 가는가.
- 기다림의 값'몇 년 뒤 매수'를 1년에서 10년까지 늘리며 경로 비교 아래 숫자에 나오는 그 해의 대출을 본다. 기다리는 동안 모은 돈과 오른 집값 중 무엇이 빠른가. 하늘네는 집값 상승률 4%에서는 기다릴수록 필요한 대출이 줄고, 6%에서는 늘어난다. 그 경계가 어디인지, 그리고 금리 곡선을 '높게 유지'로 바꾸면 한도가 모자라기 시작하는 해가 생기는지 찾는다.
- 주기형과 변동의 차이금리 시나리오를 '급등 후 복귀'로 두고 '지금 매수'의 주담대 금리를 주기형과 변동으로 바꿔 본다. 10년 뒤 순자산의 차이보다 '해마다의 주거비'에서 가장 무거운 해의 원리금 차이가 더 중요하다. 그 해의 원리금이 실수령의 몇 %인가.
- 비상금의 값비상금을 0개월로 줄이면 대출이 줄고 기본 시나리오의 순자산은 거의 그대로다. 그 대신 스트레스 지도에서 소득 감소 30%일 때 녹색 칸이 대부분 사라진다(하늘네는 195칸 중 182칸에서 26칸으로). 거꾸로 비상금을 12개월로 늘려 보면 녹색 칸이 오히려 줄어든다. 대출을 늘려 만든 비상금은 상환액도 함께 키우기 때문이다. 비상금은 수익률이 아니라 버틸 시간을 사는 돈이고, 빌려서 만든 시간은 짧다.
- 우리 집 숫자로프리셋을 하늘네로 둔 채 소득, 생활비, 예금, 보증금, 지역, 목표 집값을 우리 집 숫자로 하나씩 바꾼다. 그다음 스트레스 지도에서 우리 경로가 버티지 못하는 조건을 하나 적고, 그 조건이 현실이 될 때 할 일(지출 줄이기, 집 줄이기, 가족의 도움)을 미리 적는다.
하늘네 집 노트
하늘네는 21장에서 결정을 내렸다. 2027년 4월 전세 만기에 맞춰 B시의 같은 생활권에서 84㎡ 아파트를 6억원 안팎에 사고, 금리는 고정·주기형으로, 비상금은 6개월 치를 남긴다. 이 장의 하늘네 프리셋과 기본 설정(목표 집값 6억원, 수도권 비규제, 생애최초, 주기형 5년, 비상금 6개월)이 그 선택을 그대로 재현한 것이다. 아래 노트는 그 결정을 실험실에 넣어 다시 읽은 결과와, 독자가 같은 방법으로 자기 숫자를 넣는 순서다.
6억원, 주기형, 비상금 6개월. 그 선택을 300번의 미래에 넣어 보면
이 책의 모델로 계산하면 하늘네가 2027년 4월에 6억원 집을 사려면 집값과 거래 비용(취득세 생애최초 감면 후 약 460만원, 중개보수 240만원, 법무비 120만원, 이사비 200만원) 약 6억 1,020만원이 필요하다. 쓸 수 있는 돈은 돌려받을 보증금 중 자기 돈 2억원과 예금 약 9,600만원을 합친 약 2억 9,600만원이다. 여기서 비상금 약 3,000만원(생활비 337만원과 월 상환액 약 164만원의 6개월 치)을 남기면 대출은 약 3억 4,400만원, 금리 4%·30년 원리금균등으로 월 약 164만원이다. 최대 대출 4억 2,000만원(LTV 70%가 묶는다) 안이고, DSR은 실제 금리로 약 21%, 스트레스 가산 3%p를 넣어도 약 30%다. 첫해 주거비는 이자 약 1,370만원과 보유세·수선비, 매수 비용을 합쳐 약 2,730만원으로 전세를 유지할 때(약 760만원)의 세 배를 넘는다.
기본 시나리오(금리 4% 유지, 집값·전세가 연 2%, 예금 수익률 3%)에서 10년 뒤 순자산은 지금 매수 약 6억 9,700만원, 전세 계속 약 6억 9,200만원으로 거의 같다. 300번의 미래에서 매수의 10년 뒤 순자산은 약 5억 2,000만원에서 8억 6,000만원까지 퍼지고, 전세 계속보다 많은 미래는 10년 뒤 약 39%, 30년 뒤 약 52%다. 숫자로만 보면 하늘네의 선택은 '돈을 더 버는 길'이라기보다 '결과의 폭을 받아들이고 주거를 고정하는 길'이다. 스트레스 지도는 그 선택이 어디서 버티고 어디서 무너지는지 보여 준다. 금리가 6%p 오르고 집값이 30% 빠져도 예금은 바닥나지 않는다. 주기형 대출과 비상금이 만든 여유다. 그러나 재원이나 하늘 중 한 사람의 소득이 3년 동안 끊겨 가구 실수령이 절반으로 줄면, 금리와 집값이 그대로여도 3년째에 예금이 바닥나고 가장 깊을 때 약 2,700만원이 모자란다. 태호는 이 칸을 짚고 말한다. "이 집의 위험은 집값이 아니라 두 분의 월급입니다." 하늘네는 비상금을 대출로 더 키우는 방법도 넣어 보았지만, 상환액이 함께 커져 이 칸은 녹색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재원이 육아휴직을 쓸 계획이 생기면 그 전 2년 동안 휴직 기간에 모자랄 돈을 따로 모으기로 한다.
전세를 유지하는 길도 같은 지도에 올렸다. 소득 충격에는 훨씬 단단하지만, 300번의 미래 중 약 3분의 1에서 30년 중 한 번은 지금 집의 시세가 보증금을 다 돌려주지 못할 만큼 내려간다. 남궁현의 C아파트에는 근저당이 없어서 위험이 낮은 편이지만, 2년마다 다른 집으로 옮기면 그 숫자는 집마다 다시 계산해야 한다. 어느 쪽도 위험이 없는 길은 아니고, 하늘네는 그중 자기 가족이 견딜 수 있는 위험을 골랐다. 수입이 한 사람에게 몰린 가족이나 2~3년 안에 직장을 옮길 가족이라면 같은 지도에서 다른 답이 나올 수 있다.
핵심 정리
- 주거 경로를 고르는 일은 30년의 현금 흐름을 고르는 일이다. 다섯 경로는 '주거비'만 다르고, 그 차이가 예금과 집값 중 어디에 돈이 쌓이는지를 바꾼다.
- 대출은 DSR·LTV·금액 상한 중 가장 작은 값까지만 나온다. 금리가 오르면 DSR 한도가 줄어 같은 소득으로 살 수 있는 집값이 내려가고, 한도는 해마다 그 해의 조건으로 다시 정해진다.
- 결정론적 비교에서 어느 선이 위에 있는지는 집값 상승률, 예금 수익률, 금리라는 가정에 따라 뒤집힌다. 읽어야 할 것은 순서가 바뀌는 조건이다.
- 매수 경로는 주거비가 처음에 무겁고 갈수록 가벼워지며, 전세·월세는 처음에 가볍고 갈수록 무거워진다. 집 한 채는 주거비를 고정하는 장치이면서 레버리지를 건 투자다.
- 몬테카를로로 보면 중앙값이 비슷한 경로도 결과의 폭이 크게 다르다. 대출로 산 집은 위아래로 넓게 퍼지고, 기간이 길어질수록 확률이 바뀐다.
- 경로마다 무너지는 방향이 다르다. 매수는 현금 흐름(소득 중단, 상환 부담)에서, 전세는 보증금에서, 청약은 당첨 뒤 잔금에서 무너진다. 비상금과 고정·주기형 금리는 수익률이 아니라 버틸 시간을 산다.
- 이 실험실의 숫자는 모두 "이 책의 모델로 계산하면"이다. 전망이나 권유가 아니며, 2026년 기준 제도와 단순화한 가정 위에 있다. 정답을 주는 기계가 아니라 무엇이 결과를 크게 바꾸는지 재는 자로 쓴다.
확인 퀴즈
목표 집값 6억원, 거래 비용 1,020만원, 쓸 수 있는 돈(돌려받을 보증금 중 자기 돈 + 예금) 2억 9,600만원이고 비상금 3,000만원을 남기려 한다. 필요한 주택담보대출은 약 얼마인가?
몬테카를로 결과에서 '지금 매수'와 '전세 계속'의 10년 뒤 순자산 중앙값이 거의 같았다. 이 결과를 가장 알맞게 해석한 것은?
2026년 기준 수도권 비규제지역에서 주담대 금리가 연 4%일 때, 이 책의 엔진은 DSR 한도를 계산할 때 몇 %의 금리를 쓰는가?
이 책의 모델로 하늘네의 '지금 매수'(6억원, 주기형, 비상금 6개월)를 스트레스 지도에 넣었을 때, 금리와 집값이 그대로여도 예금이 바닥나는 조건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