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품과 하락
하늘은 요즘 밤마다 두 가지 생각 사이를 오간다. 하나는 "지금 안 사면 영영 못 산다"이다. 회사 동료가 2년 전에 산 집이 올랐다는 이야기, 단지 단톡방의 "바닥 찍었다"는 글이 그 생각을 키운다. 다른 하나는 "곧 떨어진다"이다. 유튜브의 폭락 예언, 일본처럼 30년 동안 내린다는 이야기가 그 생각을 키운다. 두 생각은 정반대인데 둘 다 같은 질문을 묻는다. 지금 가격은 거품인가. 이 장은 그 질문에 답하지 않는다. 대신 거품이 어떻게 생기고 어떻게 꺼지는지, 꺼질 때 누가 왜 무너지는지를 구조로 보고, 전망 대신 "우리 집이 견딜 수 있는 하락"을 숫자로 정한다.
- 거품을 내재 가치와 가격의 괴리, 그리고 '가격이 오를 것이라는 기대로 사는 행동'으로 정의한다.
- 추격 매수(기대)가 금리·공급 같은 다른 힘이 만든 움직임을 어떻게 키우는지 모형으로 본다.
- 낮은 금리, 쉬운 대출, 공급 부족, 성공담, 레버리지가 거품의 조건이 되는 이유를 설명한다.
- 금리 상승에서 강제 매도로 이어지는 하락의 악순환과, 대출 제도에 따라 그 고리가 얼마나 강한지를 비교한다.
- 일본 1990년대와 미국 2008년의 구조를 한국의 전세·DSR과 나란히 놓는다.
- 과열 지표를 전망이 아니라 점검으로 읽고, 스트레스 테스트로 견딜 수 있는 하락을 정한다.
거품이란 무엇인가
"거품"은 가장 자주 쓰이고 가장 덜 정의되는 말이다. 집값이 많이 오르면 거품이라 부르고, 내리면 거품이 꺼졌다고 부른다. 그러나 많이 올랐다는 것만으로는 거품이 아니다. 일자리가 몰리고 새 철도가 뚫린 동네의 집값이 오르는 것은 그 자리의 쓸모가 커졌기 때문이다(2장). 금리가 내려서 같은 임대료의 값이 커져도 집값은 오른다(3장).
경제학은 거품을 두 가지로 설명한다. 하나는 내재 가치(Fundamental value)와 가격의 괴리다. 내재 가치는 그 집이 앞으로 만들어 낼 쓸모(임대료, 또는 내가 살면서 아끼는 주거비)를 지금 값으로 바꾼 것이다. 3장의 자본환원 식으로 쓰면 이렇다.
다른 하나는 행동이다. 거품(Bubble)은 사람들이 그 집의 쓸모 때문이 아니라 가격이 더 오를 것이라는 기대 때문에 사는 상태다. 내가 비싸게 사도 더 비싸게 사 줄 사람이 있다고 믿는 한, 가격은 쓸모와 상관없이 오를 수 있다. 문제는 그 믿음이 멈추는 순간이다. 더 비싸게 사 줄 사람이 나타나지 않으면, 쓸모로 받칠 수 없는 부분이 한꺼번에 빠진다.
이 정의에는 어려움이 하나 있다. 내재 가치는 눈에 보이지 않는다. 금리가 얼마로 유지될지, 그 동네 임대료가 얼마나 오를지에 따라 내재 가치 자체가 크게 움직인다. 그래서 거품은 대개 꺼지고 나서야 확신할 수 있다. 이 장이 "지금이 거품인가"에 답하지 않는 이유가 여기 있다. 대신 거품이 자라는 조건과 꺼지는 경로를 알면, 지금 그 조건이 얼마나 갖춰졌는지를 점검하고 꺼질 때 내가 어디에 서 있을지를 미리 계산할 수 있다.
기대와 군집: 오르니까 산다
1장에서 집값을 움직이는 다섯 힘을 나누었다. 입지와 소득, 금리, 공급의 시차, 대출과 규제, 그리고 기대와 심리다. 앞의 넷은 그 자체로 가격을 밀거나 당긴다. 다섯째 힘은 조금 다르다. 혼자서 가격을 만들기보다 다른 힘이 만든 움직임을 따라가며 키운다. 지난 1년 동안 오른 것을 보고 "더 오르겠다"며 사는 행동, 곧 추격 매수(Momentum buying)다. 주변 사람들이 사니까 따라 사는 군집 행동(Herding)이 여기에 겹친다.
아래 모형에서 굵은 점선은 내재 가치, 실선은 가격이다. 어느 날 금리가 내리는 것 같은 좋은 소식이 와서 내재 가치가 10% 오른다(점선의 계단). 가격은 그 소식을 따라 오르는데, 사람들이 지난 분기의 상승을 보고 다음 분기에도 그만큼 오를 것이라 기대하는 정도가 '기대 강도'다. 대출 여력은 사람들이 빌려서 낼 수 있는 돈의 한계다. 계단 모양 손잡이를 끌어 좋은 소식이 오는 시점을 옮겨 본다.
추격 매수가 만드는 거품
이 모형에서 가격 변화의 '처음'은 내재 가치의 변화, 곧 금리나 입지 같은 다른 힘에서 왔다. 그러나 '크기'와 '모양'은 기대가 만들었다. 기대 강도가 높을수록 같은 소식이 더 큰 상승이 되고, 그 상승이 꺼질 때 가치 아래까지 내려간다. 그래서 "이 가격 변화는 어느 힘에서 왔는가"를 물을 때는 두 단계로 답해야 한다. 방아쇠를 당긴 힘(금리, 공급, 규제)과 그 움직임을 키운 힘(기대)이다. 하락기에도 같다. 금리 인상이 방아쇠라면, "더 떨어질 테니 기다리자"는 기대가 하락을 키운다.
추격 매수가 비합리적이라고만 볼 수는 없다. 집값이 몇 년씩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는 경향이 있다는 것은 여러 나라의 자료에서 관찰된다. 거래 비용이 크고, 정보가 느리게 퍼지고, 공급이 늦게 따라오기 때문이다(4장). 그러니 지난해 오른 것을 보고 올해도 오를 거라 기대하는 것은 한동안 맞는다. 문제는 모두가 같은 기대를 할 때 그 기대가 가격을 더 밀어 올리고, 그 가격을 받쳐 줄 소득과 대출이 바닥나는 시점이 반드시 온다는 데 있다.
거품의 조건: 기름과 불씨
기대만으로는 거품이 커지지 않는다. 기대가 실제 매수로 이어지려면 돈이 있어야 한다. 역사 속 큰 부동산 거품들에는 대개 다음 조건들이 겹쳐 있었다.
- 낮은 금리: 같은 월 상환액으로 더 큰 돈을 빌릴 수 있다. 내재 가치 식의 분모도 작아져 '정당화되는 가격'이 올라간다.
- 쉬운 대출: 담보인정비율(LTV)이 높고 상환 능력 심사(DSR)가 느슨하면, 소득으로 갚을 수 없는 돈도 빌릴 수 있다. 집값이 오를 것이라는 기대가 상환 계획을 대신한다.
- 공급 부족: 입주 물량이 몇 년 동안 적으면 실제로 집이 모자라 가격이 오르고, 그 상승이 기대에 불을 붙인다(4장).
- 성공담: "몇 년 만에 몇 억 벌었다"는 이야기가 주변에 퍼진다. 손해 본 사람의 이야기는 잘 퍼지지 않는다. 사는 사람의 기준이 쓸모에서 시세차익으로 바뀐다.
- 레버리지: 대출과 전세 보증금을 끼고 사면 작은 자기 돈으로 큰 집을 움직인다(10장). 오를 때는 수익을 몇 배로 키워 성공담을 만들고, 내릴 때는 손실을 몇 배로 키워 강제 매도를 만든다.
이 다섯 가운데 앞의 두 가지는 사람들이 '낼 수 있는 값'의 천장을 정한다. 아래는 가상의 B시 맞벌이 가구(연소득 7,000만원, 자기 돈 2억원)가 빌릴 수 있는 만큼 빌렸을 때 살 수 있는 최고 가격이다. 가로축은 대출 금리다. 곡선 위의 손잡이를 끌어 금리를 바꾸고, 대출 규제의 종류를 바꿔 본다.
사람들이 낼 수 있는 값의 천장
천장이 높아지면 가격이 반드시 오르는 것은 아니지만, 가격이 오를 수 있는 공간이 생긴다. 그 공간을 기대가 채운다. 반대로 금리가 오르면 천장이 내려오고, 그 천장이 지금 가격 아래로 내려가는 순간 '살 수 있는 사람'이 줄어든다. 한국이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을 대출 규제의 중심에 둔 이유가 이 그림에 있다. DSR은 천장을 소득에 묶는다. 집값이 아무리 오를 것 같아도 소득으로 갚을 수 있는 만큼만 빌리게 하는 장치다.
하락의 메커니즘: 악순환의 고리
거품이 꺼지는 방아쇠는 대개 돈의 흐름이 바뀌는 것이다. 금리가 오르거나, 대출이 막히거나, 공급이 몰리거나, 경기가 꺾여 소득이 줄어든다. 방아쇠가 당겨진 뒤 하락이 얼마나 깊어지는가는 그 시장의 빚 구조가 정한다. 아래 고리가 그 경로다.
아래 시뮬레이터는 집 240채가 있는 가상의 시장이다. 금리가 오르는 충격을 준 뒤 6년 동안 분기마다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본다. 점 하나가 집 한 채이고, 노란 점은 버티기 어려워진 집(상환 부담이 크거나 빚이 집값보다 큰 집), 빨간 점은 강제로 팔린 집이다. 시장의 빚 구조를 세 가지로 바꿔 본다.
빚 구조가 정하는 하락의 깊이
세 구조의 차이는 '얼마나 오르냐'가 아니라 '얼마나 버티냐'에서 나온다. 같은 금리 충격이라도 빚이 작고 고정금리이며 소득에 맞춰 빌린 시장은 고리가 약하게 돌고, 빚이 크고 변동금리이며 소득과 상관없이 빌린 시장은 고리가 세게 돈다. 강제 매도는 가격이 쓸모 아래로 내려가는 지점(그림 1의 오른쪽)을 만든다. 팔고 싶어서가 아니라 팔아야 해서 파는 사람이 많을수록 가격은 가치 아래까지 밀린다.
해외 사례: 일본 1990년대와 미국 2008년
두 사례는 자주 인용되지만 숫자가 부풀려지거나 구조가 생략된 채 전해지는 경우가 많다. 여기서는 확인할 수 있는 숫자만 쓰고, 나머지는 구조로 설명한다.
일본 1990년대. 1980년대 후반 일본은 낮은 금리와 풍부한 대출 속에서 주가와 땅값이 함께 치솟았다. 땅을 담보로 돈을 빌려 다시 땅과 주식을 사는 고리가 돌았다. 일본은행은 1989년 5월부터 1990년 8월까지 공정이율을 2.5%에서 6%로 올렸고, 1990년 3월에는 대장성이 금융기관의 부동산 관련 대출 증가를 억누르는 총량규제를 실시했다. 대표 주가지수인 닛케이225는 1989년 12월 29일 종가 38,915.87로 고점을 찍은 뒤 급락했고, 그 고점을 다시 넘은 것은 34년 뒤인 2024년 2월이었다. 땅값은 주가보다 늦게, 1991년 무렵부터 내리기 시작해 10년 넘게 하락했다. 일본부동산연구소의 6대 도시 상업지 지가지수는 1990년의 고점에서 2000년대 초까지 약 85% 내렸다(2차 자료로 확인, 주거지와 지방은 하락 폭이 다르다). 땅값 하락은 은행의 담보를 녹였고, 부실채권을 정리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면서 경제 전체가 긴 침체를 겪었다.
미국 2008년. 2000년대 중반 미국에서는 상환 능력이 약한 사람에게도 집값의 거의 전부를 빌려주는 서브프라임 대출(Subprime mortgage)이 늘었다. 처음 몇 년은 금리가 낮다가 나중에 크게 오르는 변동금리 상품이 많았다. 은행은 이 대출을 직접 들고 있지 않고 묶어서 증권으로 만들어 팔았다(증권화(Securitization)). 대출을 내준 쪽이 손실을 지지 않으니 심사가 느슨해졌다. 집값이 오르는 동안에는 문제가 없었다. 갚기 어려우면 집을 팔거나 오른 집값으로 다시 빌리면 됐다. 집값이 2006년 무렵 꺾이자 고리가 거꾸로 돌았다. 금리가 재조정되며 상환액이 뛰었고, 빚이 집값보다 커진 집이 압류되어 매물로 쏟아졌다. 미국의 많은 주에서는 주택담보대출이 사실상 집만 넘기면 끝나는 구조라, 빚이 집값보다 크면 갚기를 멈추는 선택도 나왔다. S&P/케이스-실러 전국 주택가격지수는 2006년 고점에서 2012년 바닥까지 약 4분의 1에서 3분의 1 하락했다(지수 종류와 계절조정 여부에 따라 약 27~35%). 증권을 들고 있던 금융기관들이 무너졌고, 2008년 9월 리먼 브러더스가 파산하며 세계 금융위기로 번졌다.
두 사례가 공통으로 보여 주는 것은 하락 뒤의 시간이다. 많이 내린 가격이 제자리로 돌아오는 데는 생각보다 오래 걸린다. 아래에서 하락 폭과 회복기의 상승률, 물가를 바꿔 가며 '본전'까지 몇 년이 걸리는지 본다. 바닥의 손잡이를 위아래로 끈다.
본전까지 몇 년인가
"30% 내리면 30% 오르면 된다"는 계산은 틀렸다. 30% 내린 값이 돌아가려면 약 43%가 올라야 하고, 50%면 100%가 올라야 한다(16장). 그 사이 물가가 오르면 명목 본전은 실질로는 손실이다. 일본의 주가지수가 1989년 고점을 넘는 데 34년이 걸렸다는 사실은 이 계산이 현실에서 얼마나 길어질 수 있는지를 보여 준다. 하락 폭보다 하락 뒤의 시간이 사람을 지치게 하고, 그 사이 이사·이직·결혼·출산 같은 '팔아야 하는 사건'이 생긴다.
한국의 사이클: 전세라는 완충과 위험
한국의 집값도 오르고 내리는 큰 흐름을 여러 번 겪었다. 이 책은 특정 시기의 수치로 비교하기보다 구조로 비교한다. 한국 시장에는 다른 나라에 없는 두 가지 장치가 있다.
첫째는 전세다. 전세 보증금은 세입자가 집주인에게 맡긴 이자 없는 빚이다(5장). 이 빚은 은행 대출 규제(LTV·DSR) 밖에 있다. 그래서 상승기에는 대출이 막혀도 전세를 끼고 집을 살 수 있어(갭투자) 레버리지가 규제를 우회한다. 반대로 하락기에는 전세가 완충 역할도 한다. 집값이 내려도 사람이 살아야 하는 집에 대한 수요(전세 수요)가 남아 있으면 전세가가 집값을 받쳐 준다. 매매가 대비 전세가 비율, 곧 전세가율(Jeonse-to-price ratio)이 높으면 집값이 쓸모(사용가치) 근처에 있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그러나 전세가율이 너무 높으면 작은 하락에도 보증금이 집값을 넘어 세입자가 위험해진다. 같은 숫자가 완충이면서 위험이다.
둘째는 DSR 중심의 대출 규제다. 2026년 기준 은행 주택담보대출은 차주의 모든 대출 원리금이 연소득의 40%를 넘지 않게 묶이고(2금융권 50%), 수도권 대출은 DSR을 계산할 때 실제 금리보다 높은 스트레스 가산금리(수도권 1.5%p, 수도권·규제지역 주담대는 하한 3%p)를 얹는다. 규제지역의 LTV는 무주택자 40%(생애최초 70%), 수도권·규제지역 주담대는 최대 6억원으로 묶여 있다. 이 장치들은 그림 2의 고리 중 ②(상환 부담)와 ⑤(빚 > 집값)를 약하게 만든다. 또 한국의 주택담보대출은 집을 넘겨도 남은 빚을 갚아야 하는 소구 구조라, 미국처럼 빚이 집값보다 크다고 상환을 멈추는 선택이 거의 없다.
그렇다고 한국 시장이 안전하다는 뜻은 아니다. 하락기의 손실은 다른 경로로 나타난다. 대출이 막힌 만큼 전세 보증금이 레버리지로 쓰였고, 하락기에는 집주인이 다음 세입자에게서 같은 보증금을 받지 못해 돌려줄 돈이 모자라는 역전세가 생긴다. 하늘네 집주인 남궁현이 2025년 재계약 때 5,000만원을 돌려줘야 했던 것이 그 예다. 전세가율이 높은 빌라·다세대에서는 보증금을 못 돌려받는 깡통전세와 전세사기가 큰 사회 문제가 되었다(7장). 앞의 시뮬레이터에서 '전세 갭투자 많음'이 보여 준 고리가 이것이다. 미국에서 은행과 증권 투자자가 졌던 손실이, 한국에서는 세입자의 보증금으로 옮겨 갈 수 있다.
과열 지표 체크리스트: 전망이 아니라 점검
거품을 미리 알아볼 수 없다면, 할 수 있는 것은 거품의 조건이 얼마나 갖춰졌는지를 점검하는 것이다. 다섯 가지 지표를 쓴다. 각 지표는 그 지역의 오랜 평균과 비교해서 읽는다. 지역마다 '정상' 수준이 다르기 때문이다.
- PIR(Price-to-income ratio): 집값이 연소득의 몇 배인가(3장). 그 지역의 장기 평균보다 크게 높으면 가격이 소득에서 멀어진 것이다.
- 전세가율: 전세가가 매매가의 몇 %인가. 매매가만 오르고 전세가가 따라오지 않아 전세가율이 장기 평균보다 크게 낮아지면, 사용가치보다 시세차익 기대로 사는 몫이 커진 신호다. 반대로 전세가율이 아주 높으면 세입자 위험 신호다.
- 주택담보대출 증가율: 빚이 소득보다 빨리 늘면 천장이 대출로 올라가고 있다는 뜻이다.
- 거래량: 평년보다 크게 많으면 추격 매수가, 크게 적으면 관망과 '버티기'가 많다는 뜻이다.
- 미분양: 새로 지은 집이 안 팔리고 쌓이면 공급이 수요를 앞선 것이고, 미분양이 바닥나면 공급이 모자란 것이다(4장).
참고로 2026년 서울의 실제 수준을 적어 둔다. 국토교통부 2024년도 주거실태조사(2025년 11월 발표)에서 자가가구의 PIR은 전국 6.3배, 수도권 8.7배, 서울 13.9배였다. 서울에서는 중간쯤 되는 집을 사려면 중간쯤 되는 소득을 14년 가까이 한 푼도 쓰지 않고 모아야 한다는 뜻이다. 이 조사 뒤에도 서울 아파트값은 더 올라, KB부동산 기준 2026년 8월 서울 아파트 중위 매매가격은 12억 9,167만원이다. 전세가율은 반대로 내려가 2026년 1월 KB 기준 서울 아파트가 50% 아래였고, 송파 39.4%, 용산 39.7%, 서초 41.6%처럼 40% 안팎인 구도 있었다. 다만 이 숫자를 위 기준에 바로 대어 과열이라고 판정하지 않는다. 주거실태조사의 PIR은 가구들의 중위 집값과 중위 소득으로 계산해 한 가구의 시세 ÷ 소득과 정의가 다르고, 서울의 '정상' 수준은 서울 자신의 장기 평균과 비교해야 하기 때문이다. 아래 계기판은 가상의 B시를 기준으로 한다.
아래 계기판의 바늘을 직접 끌거나, 미리 만든 상황을 골라 본다. 경계선은 이 책이 연습용으로 정한 기준이며 공식 기준이 아니다.
과열·냉각 점검 계기판
체크리스트는 전망 도구가 아니다. 과열 신호가 다섯 개 모두 켜져도 가격은 몇 년 더 오를 수 있고, 신호가 하나도 없어도 금리 충격이 오면 내린다. 체크리스트가 하는 일은 두 가지다. 하나는 "모두가 오른다고 할 때 실제로 무엇이 받치고 있는가"를 확인하게 하는 것, 다른 하나는 불안의 크기를 숫자의 크기에 맞추는 것이다. 다섯 바늘이 대부분 가운데에 있는데 "지금 안 사면 끝"이라는 생각이 든다면, 그 생각은 지표가 아니라 주변의 이야기에서 왔을 가능성이 크다.
내가 견딜 수 있는 하락
집값이 오를지 내릴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내리면 나는 어떻게 되는가"는 지금 계산할 수 있다. 이것을 스트레스 테스트(Stress test)라 한다. 은행과 감독 당국이 금융기관의 건전성을 볼 때 쓰는 방법을 집 한 채에 적용하는 것이다. 질문은 세 가지다.
- 집값이 내리면 내 돈은 얼마나 남는가. 자기자본은 집값에서 빚을 뺀 값이다. 빚이 그대로인 채 집값이 내리면 그 하락은 고스란히 내 돈에서 빠진다.
- 금리가 오르면 매달 버틸 수 있는가. 월 실수령에서 생활비와 원리금을 빼고도 남는가.
- 소득이 끊기면 몇 달을 버티는가. 한 사람의 휴직·이직·실직이 겹칠 때 비상금이 몇 달을 받쳐 주는가.
중요한 점이 하나 있다. 한국의 주택담보대출은 집값이 내렸다고 은행이 당장 돈을 갚으라고 하지 않는다. 집값 하락 자체가 사람을 무너뜨리지는 않는다. 사람을 무너뜨리는 것은 팔아야 하는 순간이다. 월 상환을 감당하지 못하거나, 비상금이 바닥나거나, 이사·이직으로 집을 옮겨야 할 때 집값이 내려가 있으면 그때 손실이 확정된다. 그래서 스트레스 테스트는 가격과 현금흐름을 함께 본다.
스트레스 테스트: 하늘네가 C아파트를 산다면
스트레스 테스트는 "얼마나 내릴까"라는 맞힐 수 없는 질문을 "얼마까지 내려도 괜찮은가"라는 계산할 수 있는 질문으로 바꾼다. 같은 집이라도 대출이 크면 견딜 수 있는 하락이 작아지고, 비상금이 크면 견딜 수 있는 기간이 길어진다. 정답은 없다. 집값 −20%에 금리 6%까지만 견디겠다는 가구도 있고, −40%와 금리 8%까지 견디고 싶은 가구도 있다. 중요한 것은 그 선을 사기 전에 정하고, 그 선을 넘는 조건(가격, 대출 규모)은 처음부터 고르지 않는 것이다.
서울 고가 아파트에서는 같은 식이 다른 답을 낸다. 2026년 기준 수도권·규제지역 주택담보대출은 시가 15억원 초과~25억원 이하면 4억원, 25억원 초과면 2억원까지로 묶여 있다(9장). 서울 A구 84㎡(교육용 17억원)를 주담대 4억원으로 산다면 자기자본이 0이 되는 하락 \(d^{*}\)는 약 76%, 서울 강남권 40억원대 아파트를 주담대 2억원으로 산다면 약 95%다. 은행 대출만 보면 레버리지로 무너질 위험은 작다. 대신 13억~38억원의 자기 돈이 집 한 채에 묶인다. 그 돈의 일부를 가족에게 빌리거나 신용대출로 메웠다면 그 빚도 식의 \(D\)에 넣고, 월 상환은 현금흐름 쪽에 넣어 다시 센다. 대출 한도가 막은 레버리지가 다른 곳으로 옮겨 가지 않았는지까지 세어야 스트레스 테스트가 된다.
- 금리 유형과 변동 주기: 고정금리 기간이 몇 년이고, 그 뒤 몇 개월마다 어떤 기준금리에 연동되는가. 변동 주기가 짧을수록 금리 상승이 빨리 닥친다.
- 금리 상한: 금리 상한(캡)이 있는 상품인가. 없다면 스트레스 테스트에 기준보다 2~3%p 높은 금리를 넣어 본다.
- 거치 기간과 상환 방식: 이자만 내는 기간이 끝나면 월 상환이 얼마로 뛰는가.
- 중도상환수수료: 집을 팔거나 대출을 갈아탈 때 몇 년 안이면 수수료가 붙는가.
- 비상금: 잔금 치르고 남는 현금이 생활비와 원리금 몇 달 치인가. 취득세·중개보수·이사비를 뺀 뒤의 숫자로 센다.
하늘네 집 노트
"영영 못 산다"와 "곧 떨어진다" 대신, "20% 내려도 버틴다"
하늘은 두 불안을 체크리스트에 올렸다(교육용 가상 데이터). B시 84㎡의 PIR은 약 6.7배(시세 6억 2,000만원 ÷ 하늘네 연소득 9,200만원)로, B시의 장기 평균으로 가정한 6배보다 12% 높다. 싸지는 않다. 하지만 전세가율 약 65%(4억 ÷ 6억 2,000만원)는 장기 평균으로 가정한 68%와 크게 다르지 않고, 주담대 증가율은 소득 증가율보다 1%p 높은 정도이며, 거래량은 평년보다 20% 적고 미분양은 30% 많다. 다섯 바늘 가운데 경계를 넘은 것은 없다. "지금 안 사면 영영 못 산다"를 받칠 과열 신호도, "곧 떨어진다"를 받칠 붕괴 신호도 뚜렷하지 않다. 하늘이 웃는다. "결국 체크리스트가 말해 준 건, 둘 다 내 불안이었다는 거네."
그래서 둘은 전망 대신 견딜 수 있는 선을 정했다. 자기 돈 약 2억 4,000만원과 대출 3억 8,000만원으로 C아파트(6억 2,000만원)를 산다고 가정하고 이 책의 엔진으로 계산했다. 매수 비용을 치르고 남는 비상금은 약 2,655만원이다. 금리가 6%로 올라도 원리금은 월 약 228만원으로 월 여유가 약 81만원 남는다. 그 상태에서 재원의 소득이 6개월 끊겨도 비상금이 약 1,283만원 남는다. 집값이 20% 내리면 자기자본은 2억 4,000만원에서 1억 1,600만원으로 절반 넘게 줄지만, 팔지 않으면 손실은 확정되지 않는다. 자기자본이 0이 되는 하락은 약 39%다. 태호가 덧붙인다. "집값보다 무서운 건 팔아야 하는 사정입니다. 아이 학교 때문에 몇 년은 안 움직인다는 게 두 분한테는 제일 큰 완충이에요." 하늘네가 정한 선은 이렇다. 집값 −20%, 금리 6%, 한 사람 소득 6개월 공백이 한꺼번에 와도 팔지 않고 버틴다. 이 선을 넘는 가격이나 대출은 고르지 않는다.
핵심 정리
- 거품은 많이 오른 가격이 아니라, 쓸모(내재 가치)로 설명되지 않고 '더 오를 것'이라는 기대로만 받쳐지는 가격이다. 내재 가치는 금리와 성장 가정에 민감해서 거품은 대개 꺼진 뒤에야 확신할 수 있다.
- 기대(추격 매수와 군집)는 혼자 가격을 만들기보다 금리·공급 같은 다른 힘이 만든 움직임을 키우고, 꺼질 때는 가치 아래까지 끌어내린다.
- 낮은 금리와 쉬운 대출은 '낼 수 있는 값'의 천장을 올리고, 공급 부족과 성공담은 기대에 불을 붙이며, 레버리지는 오를 때와 내릴 때 모두 움직임을 키운다.
- 하락은 금리 상승 → 상환 부담 → 매물 증가 → 가격 하락 → 담보가치 하락 → 강제 매도의 고리로 깊어진다. 고리의 세기는 LTV, DSR, 변동금리 비중, 소구·비소구 같은 빚의 구조가 정한다.
- 일본은 담보 대출과 은행 부실이, 미국은 서브프라임과 증권화가 고리를 키웠다. 한국은 DSR·LTV 규제와 소구 대출이 고리를 약하게 하는 대신, 전세 보증금이 규제 밖의 레버리지이자 하락기 손실의 통로가 된다.
- 과열 지표(PIR, 전세가율, 대출 증가율, 거래량, 미분양)는 전망이 아니라 점검이다. 지역의 장기 평균과 비교해 읽는다.
- 스트레스 테스트로 "얼마나 내릴까"를 "얼마까지 내려도 버티는가"로 바꾼다. 자기 돈 비율이 견딜 수 있는 가격 하락의 한계이고, 사람을 무너뜨리는 것은 가격보다 팔아야 하는 현금흐름이다.
확인 퀴즈
이 장의 정의에 따를 때 '거품'에 가장 가까운 것은?
같은 금리 충격에도 하락의 악순환이 약하게 도는 시장의 특징으로 가장 알맞은 것은?
6억원짜리 집을 자기 돈 1억 5,000만원과 대출 4억 5,000만원으로 샀다. 집값이 몇 % 내리면 자기자본이 0이 되는가? (팔 때 비용은 무시)
한국 시장에서 전세 보증금이 하락기에 갖는 성격으로 가장 알맞은 것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