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약과 권리 지키기
태호의 사무소 책상 위에 서류 두 묶음이 놓인다. 하나는 하늘네가 지금 사는 C아파트의 등기부등본이고, 다른 하나는 같은 단지에 매물로 나온 다른 집의 등기부등본이다. "집을 사든 다시 빌리든, 계약서보다 이 종이를 먼저 읽어야 합니다." 하늘은 처음 보는 서류에 '갑구', '을구', '채권최고액' 같은 말이 빼곡한 것을 보고 막막해진다. 그런데 몇 해 사이 뉴스에 오르내린 전세사기 피해의 상당수는 이 종이와 몇 가지 날짜만 제대로 봤어도 줄일 수 있었던 일이다. 보증금은 대개 한 가구 재산의 가장 큰 덩어리이고, 그 돈을 지키는 장치는 법에 여러 겹으로 마련되어 있다. 다만 그 장치는 세입자가 정해진 날짜에 정해진 일을 했을 때만 작동한다. 이 장에서는 그 서류를 읽는 법과 그 날짜들을 하나씩 익힌다.
- 등기부등본의 표제부·갑구·을구를 읽고 근저당, 가압류, 신탁등기 같은 위험 신호를 찾는다.
- 채권최고액과 선순위·후순위의 뜻을 알고, 경매 때 내 보증금이 몇 번째로 돌아오는지 계산한다.
- 건축물대장에서 위반건축물과 용도(근린생활시설)를 확인한다.
- 대항력(전입신고 + 점유, 다음 날 0시)과 확정일자·우선변제권이 생기는 시각의 차이를 설명한다.
- 소액임차인 최우선변제와 전세보증금반환보증(HUG)의 요건을 내 숫자로 점검한다.
- 전세사기의 대표 유형과 피해 뒤에 쓸 수 있는 제도(임차권등기명령, 전세사기피해자 특별법)의 구조를 안다.
계약서보다 먼저 읽는 서류
전세든 매매든 집에 큰돈을 넣기 전에 읽어야 할 공적 서류가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등기부등본(Real estate register)이다. 정식 이름은 등기사항전부증명서로, 이 집의 주인이 누구이고 이 집에 어떤 빚과 권리가 얹혀 있는지를 국가가 기록해 둔 문서다. 대법원 인터넷등기소에서 누구나 몇백 원에서 1,000원 남짓에 뗄 수 있다. 집주인의 허락이 필요 없다.
등기부는 세 부분으로 나뉜다. 맨 앞의 표제부는 집의 주소와 구조, 면적을 적은 '신분증'이다. 갑구는 소유권에 관한 기록으로 누가 언제 어떤 이유로 주인이 되었는지, 그 소유권을 묶는 압류·가압류·신탁 같은 기록이 있는지를 적는다. 을구는 소유권 밖의 권리, 대표적으로 은행의 근저당권과 전세권·임차권을 적는다. 아래 그림은 세 부분과 세입자가 각각에서 확인할 것을 정리한 것이다.
등기부 말고도 함께 볼 서류가 있다. 건물의 용도와 불법 여부를 적은 건축물대장, 집주인의 세금 체납 여부를 보여 주는 납세증명서, 같은 건물에 먼저 들어와 있는 세입자를 보여 주는 전입세대 확인서와 확정일자 부여 현황이다. 이 장은 이 서류들을 차례로 읽고, 그 서류에 적힌 날짜들이 어떻게 보증금의 순서를 정하는지 본다. MoneyBook의 집: 월세·전세·매매가 등기부와 대항력의 기초를 짧게 다루었다면, 이 장은 신탁·가압류·건축물대장, 최우선변제와 보증 요건, 피해 뒤의 제도까지 더 깊게 들어간다.
등기부등본 읽기 실습
아래는 교육용으로 만든 가상의 등기부 세 장이다. 하늘네가 지금 사는 C아파트, 같은 단지에 매물로 나온 집, 그리고 연습용 빌라 한 채다. 줄을 눌러 위험하다고 생각하는 기록에 표시한다. 맞게 고르면 빨간색(위험)이나 노란색(주의)으로, 위험이 아닌 줄을 고르면 녹색으로 바뀌고 아래에 그 줄의 뜻이 나온다. 각 등기부에서 위험 신호를 모두 찾아본다.
등기부에서 위험 신호 찾기
세 장의 등기부는 서로 다른 교훈을 준다. 지금 전셋집처럼 을구에 줄이 그어진 기록만 있다면 살아 있는 빚이 없다는 뜻이다. 매수 후보 매물처럼 을구에 근저당이 둘 있고 갑구에 최근 가압류가 있다면, 집주인이 돈 문제로 다툼 중이라는 신호다. 연습용 빌라처럼 을구가 깨끗해도 갑구에 신탁이 있으면 법적 주인은 계약하러 나온 사람이 아니다. 등기부는 '빚이 얼마인가'만이 아니라 '누구와 계약해야 하는가'와 '지금 이 집주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를 함께 보여 준다.
근저당과 채권최고액: 내 앞에 선 빚
을구에서 가장 자주 보는 기록은 근저당권(Collateral mortgage)이다. 은행이 집을 담보로 돈을 빌려주면서 '돈을 못 갚으면 이 집을 경매로 팔아 먼저 가져가겠다'는 권리를 등기해 둔 것이다. 근저당에는 빌린 원금이 아니라 채권최고액이 적힌다. 원금에 밀린 이자와 비용까지 더해 은행이 이 집에서 최대로 받아 갈 수 있는 한도다. 관행적으로 은행은 대출 원금의 120% 안팎, 2금융권은 130% 안팎으로 잡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채권최고액 3억 6,000만원은 대략 원금 3억원짜리 대출로 읽는다. 실제 남은 빚은 갚은 만큼 줄어 있을 수 있지만, 세입자는 안전하게 채권최고액 전부를 내 앞의 빚으로 보고 계산한다.
경매에서는 등기된 순서와 날짜대로 돈을 나눈다. 나보다 먼저 권리를 얻은 채권자를 선순위, 나중에 얻은 채권자를 후순위라 한다. 선순위 근저당이 있는 집에 들어가면 경매 때 은행이 먼저 채권최고액 한도까지 가져가고, 나는 남은 돈에서 보증금을 받는다. 아래는 시세 3억원짜리 가상의 빌라다. 왼쪽 막대의 낙찰가 선을 위아래로 끌어 집이 경매에서 얼마에 팔리는지 정하고, 오른쪽에서 그 돈이 누구에게 먼저 가는지 본다.
경매 대금은 누구에게 먼저 가는가
그래프에서 본 것은 순서의 힘이다. 같은 낙찰가라도 내 앞에 선 빚이 크면 내 몫이 먼저 깎인다. 그래서 세입자가 계산할 숫자는 전세가율 하나가 아니라 (선순위 채권최고액 + 내 보증금) ÷ 시세다. 이 비율이 높을수록 집값이 조금만 내려도, 또는 경매에서 시세보다 싸게 팔리기만 해도 보증금이 깎인다. 경매에서 집은 대개 시세보다 낮은 값에 팔리고, 빌라처럼 거래가 적은 집은 그 차이가 더 크다. 이 비율이 어느 선을 넘으면 위험한지는 집의 종류와 시장에 따라 다르지만, 뒤에서 볼 보증기관의 기준(90%)이 하나의 참고선이 된다.
순서는 반대로도 작동한다. 내가 이사하고 전입신고와 확정일자를 마친 뒤에 집주인이 새로 받은 근저당은 나보다 후순위다. 그래서 '내가 들어간 날 이후에 생긴 빚'은 내 보증금에 직접 영향을 주지 않는다. 문제는 그 '들어간 날'의 기준이 하루 단위로 정해진다는 데 있다. 이것은 뒤의 대항력 절에서 다룬다.
갑구의 경고등과 건축물대장
을구가 빚의 크기를 보여 준다면, 갑구는 집주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보여 준다. 다음 기록이 보이면 계약을 멈추고 이유를 확인한다.
| 기록 | 뜻 | 세입자에게 위험한 이유 |
|---|---|---|
| 압류 | 세금을 밀렸거나 확정된 빚 때문에 국가·채권자가 집을 묶었다 | 곧 공매·경매로 갈 수 있다. 세금은 내 보증금보다 앞설 수 있다 |
| 가압류 | 빚 다툼이 끝나기 전에 채권자가 집을 미리 묶어 두었다 | 나보다 먼저 들어온 가압류 채권자는 경매 때 나와 돈을 나누거나 앞선다. 집주인 자금 사정의 신호다 |
| 가처분 | 소유권 등 특정 권리를 두고 다툼이 있어 집의 처분을 막았다 | 다툼 결과에 따라 소유자가 바뀌면 지금 집주인과 맺은 계약이 흔들릴 수 있다 |
| 신탁 | 소유권이 신탁회사(수탁자)로 넘어가 있다 | 원래 집주인(위탁자)은 법적 주인이 아니다. 수탁자 동의 없는 임대차는 보호받지 못할 수 있다 |
| 경매개시결정 | 이미 경매 절차가 시작되었다 | 이 기록 뒤에 들어간 세입자는 최우선변제도 받기 어렵다 |
| 최근의 소유권 이전 | 몇 달 안에 주인이 바뀌었다 | 그 자체로 위험은 아니지만, 보증금보다 싸게 산 새 주인(이른바 바지 집주인)일 수 있어 이유를 묻는다 |
신탁등기(Trust registration)는 따로 짚을 만하다. 집주인이 대출을 받거나 관리를 맡기려고 집의 소유권을 부동산신탁회사에 넘기는 경우가 있다. 이때 등기부의 소유자는 신탁회사이고, 원래 집주인은 '위탁자'로 남는다. 을구에 근저당이 없어 깨끗해 보여도, 실제로는 신탁 계약서(신탁원부)에 대출해 준 금융기관이 '우선수익자'로 올라 있어 그 돈이 내 보증금보다 앞설 수 있다. 신탁된 집과 계약하려면 등기소에서 신탁원부를 떼어 임대 권한이 누구에게 있는지 보고, 신탁회사(그리고 우선수익자)의 동의서를 받아야 한다. 위탁자인 원래 집주인과만 계약하면 법적으로 보호받지 못하는 경우가 있고, 이런 유형의 분쟁이 실제로 적지 않다.
등기부에 나오지 않는 위험은 건축물대장(Building register)에서 찾는다. 정부24나 세움터에서 뗄 수 있는 이 서류에는 건물의 용도, 층별 면적, 그리고 불법 증축·용도 변경이 적발되면 붙는 위반건축물 표시가 나온다. 위반건축물은 이행강제금이 부과되고, 전세대출이나 전세보증 가입이 거절될 수 있다. 용도도 중요하다. 건축물대장의 용도가 주택이 아니라 근린생활시설(1층 상가처럼 동네 생활을 위한 시설)이나 업무시설인데 실제로는 방으로 꾸며 세를 놓는 경우가 있다. 이런 집은 주거로 쓰고 있어도 전세대출과 보증 가입이 막히는 경우가 많고, 나중에 원상 복구 명령이 나오면 살던 집에서 나가야 할 수도 있다. 다가구주택이라면 집 전체가 하나의 등기라서 같은 건물에 먼저 들어온 다른 세입자들의 보증금 합계가 내 앞의 빚이 된다. 이 합계는 전입세대 확인서와 확정일자 부여 현황으로 확인한다.
대항력과 확정일자: 하루의 틈
세입자의 보증금을 지키는 두 가지 법적 힘이 있다. 대항력(Opposability)은 집주인이 바뀌어도 새 주인에게 "계약 기간 동안 살고, 끝나면 보증금을 돌려받겠다"고 주장할 수 있는 힘이다. 집에 실제로 들어가 사는 것(점유)과 그 주소로 전입신고를 하는 것, 두 가지를 갖추면 그다음 날 0시에 생긴다(주택임대차보호법 제3조). 우선변제권(Preferential repayment right)은 집이 경매로 넘어갔을 때 나보다 늦게 권리를 얻은 채권자보다 먼저 보증금을 받을 권리다. 대항력 요건에 더해 계약서에 확정일자를 받아야 생긴다(제3조의2). 확정일자는 주민센터나 인터넷등기소에서 받을 수 있고, 6장에서 본 임대차 신고를 하면 받은 것으로 본다.
함정은 시각이다. 은행의 근저당은 등기소에 접수한 그 순간 효력이 생긴다. 세입자의 대항력은 전입신고 다음 날 0시에 생긴다. 집주인이 내 잔금일 당일 집을 담보로 대출을 받으면, 같은 날이라도 은행이 나보다 앞선다. 아래 타임라인의 세 표식을 끌어 날짜와 시각을 바꿔 본다.
순위 타임라인: 같은 날이면 누가 먼저인가
타임라인이 보여 주는 하루의 틈은 전세사기의 대표적인 수법 하나가 노리는 자리다(그림 2의 ②). 그래서 실무에서는 계약서에 "임대인은 잔금일 다음 날까지 이 집에 담보권 설정 등 권리 변동을 일으키지 않는다. 어기면 임차인은 계약을 해제할 수 있고 임대인은 손해를 배상한다"는 특약을 넣고, 잔금을 보내기 직전에 등기부를 다시 뗀다. 이사 날 전입신고를 미루지 않는 것, 계약 기간 동안 주소를 다른 곳으로 옮기지 않는 것도 같은 이유다. 주소를 옮기면 대항력이 사라지고, 다시 전입해도 그날 다음 날부터 새로 생긴다. 계약을 갱신하며 보증금을 올렸다면 늘어난 금액에 대해서는 새로 확정일자를 받아야 한다. 그 증액분의 순위는 새 확정일자 날짜로 정해진다.
최우선변제: 소액 보증금의 안전판
보증금이 작은 세입자에게는 특별한 보호가 하나 더 있다. 보증금이 일정 금액 이하인 소액임차인은 경매에서 선순위 근저당보다도 먼저 일정 금액을 받는다. 이것을 최우선변제(Top-priority repayment)라 한다. 경매개시결정 등기 전에 대항력 요건(점유 + 전입신고)을 갖추기만 하면 되고 확정일자는 필요 없다. 2026년 기준 금액은 다음과 같다(주택임대차보호법 시행령 제10조·제11조, 2023년 2월 21일 이후 담보물권 설정분).
| 지역 | 보증금이 이 금액 이하면 | 먼저 받는 금액 |
|---|---|---|
| 서울특별시 | 1억 6,500만원 | 5,500만원 |
| 과밀억제권역(서울 제외)·세종·용인·화성·김포 | 1억 4,500만원 | 4,800만원 |
| 광역시(과밀억제권역·군 제외)·안산·광주·파주·이천·평택 | 8,500만원 | 2,800만원 |
| 그 밖의 지역 | 7,500만원 | 2,500만원 |
여기에는 중요한 단서가 둘 있다. 첫째, 어느 기준표를 쓸지는 내가 계약한 날이 아니라 그 집의 가장 앞선 담보물권(근저당 등)이 설정된 날로 정한다. 근저당이 오래전에 설정된 집이라면 그때의 더 낮은 기준이 적용될 수 있다. 은행이 대출해 줄 때 예상하지 못한 금액이 앞에 끼어들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둘째, 최우선변제 금액의 합은 집값(배당할 금액)의 2분의 1을 넘지 못한다. 세입자가 많은 다가구주택에서는 이 한도 때문에 각자 덜 받을 수 있다. 아래에서 보증금 손잡이를 끌어 본다.
최우선변제의 절벽
최우선변제는 사회초년생의 원룸이나 작은 빌라 보증금을 지키는 마지막 그물이다. 하지만 그 그물은 금액이 정해져 있어서, 보증금이 기준을 넘는 순간 통째로 빠진다. 수도권 아파트 전세처럼 보증금이 억 단위로 큰 세입자에게는 해당하지 않는다. 하늘네의 보증금 4억원도 어느 지역 기준으로도 소액임차인이 아니다. 이런 세입자에게 남은 장치가 다음 절의 보증이다.
전세보증금반환보증과 만기 뒤의 장치
전세보증금반환보증(Jeonse deposit return guarantee)은 집주인이 만기에 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하면 보증기관이 대신 돌려주고, 나중에 집주인에게 받아 내는 상품이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 한국주택금융공사(HF), 서울보증보험(SGI)이 비슷한 상품을 운영한다. 세입자가 보증료를 내고 가입하며, 가입하려면 집과 계약이 몇 가지 조건을 맞춰야 한다. HUG의 2026년 기준 주요 요건은 다음과 같다(대체로 확인).
126%라는 숫자가 '공시가격의 126%까지 전세를 놓을 수 있다'는 기준처럼 읽히면서, 시세보다 공시가격이 높게 잡힌 빌라나 감정가를 부풀린 집에서 보증금이 실제 가치를 넘는 일이 생겼다. 그래서 2023년 5월에 기준이 '공시가격 150%, 전세가율 100%'에서 지금의 '140%, 90%'로 강화되었다. 담보인정비율을 더 낮추는 방안이 논의된 적은 있지만 2026년 10월 기준 시행 근거는 확인하지 못했다. 아래에서 집의 종류와 금액을 바꿔 가입 요건을 점검해 본다.
보증 가입 요건 점검기
보증에 가입하면 집주인이 돌려주지 못할 때 기다림과 소송의 부담을 보증기관이 진다. 그 대가로 보증료를 내고, 가입 요건을 못 맞추는 집은 처음부터 걸러진다. 그래서 보증 가입이 '되느냐 안 되느냐' 자체가 그 집의 위험을 알려 주는 신호가 된다. 집주인이 "보증은 안 되지만 문제없다"고 말하는 집은 다시 본다. 다만 보증이 된다고 집이 안전하다는 뜻은 아니다. 요건은 시세와 공시가격으로 계산하는데, 그 시세가 부풀려졌다면 보증 심사도 뚫릴 수 있다.
만기가 지났는데도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 세입자가 다른 집으로 이사해야 한다면 임차권등기명령을 쓴다. 법원에 신청해 등기부에 '이 집에 보증금을 받지 못한 세입자가 있다'는 임차권등기를 하는 제도다. 등기가 마쳐지면 세입자가 이사하고 주소를 옮겨도 그동안의 대항력과 우선변제권이 유지된다. 2023년 7월부터는 집주인에게 결정이 송달되기 전에도 등기할 수 있게 바뀌어, 집주인이 연락을 끊어도 등기가 가능해졌다. 효력은 법원 결정이 아니라 등기가 마쳐진 때 생기므로, 등기부에서 임차권등기가 올라온 것을 확인한 뒤에 이사한다.
전세사기의 유형과 피해자 지원
2020년대 초반 수도권 빌라·오피스텔을 중심으로 대규모 전세사기가 잇따랐고, 피해자의 상당수가 처음 목돈을 맡긴 20~30대였다. 수법은 여러 가지지만 뼈대는 이 장에서 본 장치의 빈틈을 파고든다. 아래 그림은 대표적인 네 유형이다. 특정 사건이 아니라 반복되어 온 구조를 일반화한 것이다.
이 사기들이 왜 2020년대 초반에 몰렸는지 물으면, 이 책의 다섯 힘 가운데 여럿이 겹친 결과로 볼 수 있다. 금리가 낮던 시기에 전세대출과 보증이 쉽게 나와 세입자가 큰 보증금을 낼 수 있었고(금리와 대출 제도), 빌라처럼 거래가 적은 집에서는 시세를 확인하기 어려웠으며, 집값이 오를 것이라는 기대가 보증금으로 집을 사는 무자본 갭투자를 부추겼다. 이후 금리가 오르고 빌라 시세가 내려가자 보증금을 돌려줄 수 없는 집이 한꺼번에 드러났다(5장의 역전세 구조). 사기는 범죄지만, 그 범죄가 커질 수 있었던 바탕에는 가격과 금리의 힘이 있었다.
피해가 커지자 2023년 6월 전세사기피해자 지원 및 주거안정에 관한 특별법이 시행되었다. 처음에는 2년 한시법이었지만 2025년 개정으로 2027년 5월 말까지 연장되었다(대체로 확인). 큰 구조는 다음과 같다. 세입자가 신청하면 국토교통부의 전세사기피해지원위원회가 요건(대항력과 확정일자 등을 갖춘 임차인, 일정 금액 이하의 보증금, 여러 명의 피해 또는 그 우려, 임대인의 반환 의사가 없다고 의심할 사정 등)을 심사해 피해자로 결정한다. 피해자로 결정되면 경매 유예·정지 신청, 경매에서 그 집을 먼저 살 수 있는 우선매수권, 우선매수권을 한국토지주택공사(LH)에 넘겨 LH가 산 뒤 공공임대로 계속 살 수 있게 하는 방안, 저리 대출과 긴급 주거 지원 같은 금융·주거 지원을 받을 수 있다. 2024년 개정으로 LH가 경매로 싸게 산 차액(경매 차익)을 피해자의 임대료 지원이나 퇴거 시 지급에 쓰는 방식도 더해졌다. 보증금 기준액, 요건의 세부, 지원 내용은 개정이 잦아 신청 전에 국토교통부와 LH의 최신 안내로 확인해야 한다.
- 집을 보기 전: 같은 단지·동네의 실거래가와 전세 시세(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 안심전세앱 등)로 (선순위 + 보증금) ÷ 시세를 어림한다. 신축 빌라처럼 시세가 없으면 공시가격과 감정가를 따로 본다.
- 계약서 쓰기 직전: 등기부등본을 새로 떼어 소유자, 갑구의 압류·가압류·가처분·신탁, 을구의 채권최고액을 본다. 건축물대장에서 용도(주택인가)와 위반건축물 표시를 본다.
- 계약하는 사람: 신분증과 등기부의 소유자를 대조한다. 대리인이면 위임장과 인감증명서를 확인하고 소유자와 직접 통화한다. 신탁된 집이면 신탁원부와 수탁자 동의서를 받는다. 보증금은 소유자 명의 계좌로만 보낸다.
- 집주인의 세금과 다른 세입자: 납세증명서(국세·지방세)를 받는다. 다가구라면 전입세대 확인서와 확정일자 부여 현황으로 먼저 들어온 세입자의 보증금 합계를 확인한다.
- 특약: 잔금일 다음 날까지 근저당 설정·소유권 이전 등 권리 변동 금지, 어기면 해제와 배상. 보증 가입이 거절되면 계약을 해제하고 계약금을 돌려받는다. 매매로 집주인이 바뀌면 미리 알린다.
- 잔금 당일: 송금 직전에 등기부를 다시 뗀다. 바로 이사하고 그날 전입신고를 하며, 임대차 신고(또는 확정일자)를 마친다.
- 입주 뒤: 다음 날 등기부를 다시 떼어 내 대항력보다 앞선 기록이 새로 생기지 않았는지 본다. 전세보증 가입은 신청 기한 안에 한다.
- 만기 6~2개월 전: 갱신 여부를 기록이 남는 방식으로 주고받는다. 돌려받지 못할 조짐이 보이면 보증기관에 미리 알리고, 이사해야 하면 임차권등기를 마친 뒤 주소를 옮긴다.
하늘네 집 노트
태호는 6장에서 계산한 만기의 세 갈래를 이번에는 '보증금이 얼마나 지켜지는가'의 눈으로 본다. 하늘네 C아파트의 등기부는 깨끗하다. 을구에는 2021년에 지워진 전 주인의 근저당만 있고, 갑구의 마지막 기록은 2021년 남궁현의 매매다. 하늘네의 주민등록초본에는 2025년 4월 입주일에 전입한 기록이 있고, 계약서에는 같은 날 확정일자가 찍혀 있다. 아래 그래프에서 집값 하락 손잡이를 끌고, 갱신 뒤 집주인이 근저당을 새로 설정하는 경우도 켜 본다.
하늘네 보증금 종합 점검
지금 전셋집은 깨끗하고, 매수 후보 매물에는 신호가 셋 있다
지금 전셋집(C아파트, 시세 약 6억 2,000만원). 갑구의 소유자는 2021년에 6억 8,000만원에 산 남궁현이고, 압류·가압류·신탁은 없다. 을구의 근저당은 전 주인이 2021년에 갚고 지운 것뿐이라 하늘네 앞에 선 빚은 0원이다. 하늘네는 2025년 4월 입주일에 전입신고를 했고 같은 날 확정일자를 받았으니, 입주 다음 날 0시부터 대항력과 우선변제권이 있다. 이 책의 모델로 계산하면 보증금 4억원은 시세가 20% 내려도 낙찰가율 80%에서 약 98%, 30% 내려도 약 86%가 돌아온다(5장의 회수율 계산과 같은 엔진). 갱신해서 4억 2,000만원이 되면 HUG 기준으로 (선순위 0 + 4억 2,000만원) ≤ 6억 2,000만원 × 90% = 5억 5,800만원이라 시세 기준 요건을 맞춘다. 공시가격(현실화율 약 69%로 어림하면 약 4억 2,800만원) × 126%로 보아도 약 5억 3,900만원이라 넉넉하다. 보증금도 수도권 한도 7억원 안이다.
태호가 짚는 위험 신호. 첫째, 갱신으로 늘어나는 2,000만원은 새 확정일자를 받아야 하고, 그 전에 집주인이 근저당을 설정하면 증액분은 그 뒤로 밀린다. 갱신 계약서를 쓰는 날 등기부를 다시 떼고, 그날 바로 확정일자를 받는다. 둘째, 남궁현은 2주택자라 그의 세금 사정은 등기부에 나오지 않는다. 2023년 개정법에 따라 갱신 계약 때도 납세증명서를 요청한다. 셋째, 보증 가입을 원하면 갱신 계약을 맺자마자 신청 기한 안에 신청한다. 매수 후보 매물(같은 단지 105동, 교육용 가상)에서는 신호가 셋이다. 을구에 은행 근저당(채권최고액 3억 6,000만원, 원금 약 3억원 추정)과 2024년에 설정된 저축은행 근저당(채권최고액 6,500만원)이 있고, 갑구에 2026년 8월의 가압류(청구금액 4,000만원)가 있다. 태호는 "근저당은 잔금으로 갚고 지우는 게 보통이지만, 2금융 추가 대출과 최근 가압류는 매도인 자금 사정이 빠듯하다는 뜻입니다. 계약한다면 잔금 때 모든 말소를 동시에 처리하는 조건과, 계약 뒤 새 압류가 들어오면 해제할 수 있다는 특약이 필요합니다"라고 말한다. 매매 절차와 비용은 다음 장의 몫이다.
핵심 정리
- 등기부등본의 표제부는 집의 신분증, 갑구는 소유권과 그것을 묶는 기록(압류·가압류·가처분·신탁), 을구는 근저당 같은 빚이다. 계약 직전, 잔금 직전, 전입 다음 날 세 번 뗀다.
- 근저당에는 원금이 아니라 채권최고액(관행적으로 원금의 120~130%대)이 적힌다. 세입자는 (선순위 채권최고액 + 내 보증금) ÷ 시세로 위험을 본다.
- 신탁된 집의 법적 주인은 신탁회사다. 건축물대장의 위반건축물·근린생활시설 표시는 대출·보증을 막고 거주 자체를 흔들 수 있다.
- 대항력은 점유 + 전입신고 다음 날 0시에, 우선변제권은 여기에 확정일자를 더해 생긴다. 근저당은 접수 즉시 효력이 생겨 같은 날이면 은행이 앞선다. 갱신 증액분은 새 확정일자 날짜로 순위가 정해진다.
- 소액임차인 최우선변제는 지역별 기준 이하의 보증금에서 일정액을 선순위보다 먼저 준다. 기준표는 가장 앞선 담보물권 설정일로 정하고, 기준을 넘으면 보호가 통째로 사라진다.
- HUG 전세보증은 (선순위 + 보증금) ≤ 주택가격 × 90%, 공시가격 기준이면 공시가격의 126%가 핵심 요건이다. 가입 가능 여부 자체가 위험 신호지만, 시세가 부풀려지면 심사도 뚫릴 수 있다.
- 만기 뒤 돌려받지 못하면 임차권등기를 마친 뒤 이사한다. 전세사기피해자 특별법(2027년 5월 말까지)은 피해자 결정, 경매 지원, 공공임대, 금융 지원을 제공하지만 보증금 전액 회복을 보장하지 않는다.
확인 퀴즈
잔금일인 5월 10일 오후에 이사하고 그날 전입신고와 확정일자를 마쳤다. 집주인은 같은 날 오전에 은행 근저당을 접수했다. 경매가 열리면 누가 먼저 배당받는가?
등기부 을구에 '근저당권설정, 채권최고액 금 240,000,000원'이 말소되지 않은 채 있다. 세입자가 이 기록을 읽는 방법으로 가장 알맞은 것은?
서울의 한 빌라에 보증금 1억 7,000만원으로 들어가려 한다. 이 집의 첫 근저당은 2024년에 설정되었다. 소액임차인 최우선변제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2026년 기준)
공시가격 2억원인 수도권 빌라(시세 정보 없음, 선순위 채권 없음)에 전세보증금반환보증(HUG)을 들려고 한다. 2026년 기준 핵심 요건으로 볼 때 가입할 수 있는 보증금의 최대 금액은 대략 얼마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