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지: 같은 평수, 두 배의 가격
민태호의 사무실 벽에는 수도권 지도가 붙어 있다. 하늘이 휴대전화로 찾아본 숫자를 읽는다. 서울 A구의 84㎡ 아파트는 약 17억원, 지금 사는 경기 B시의 C아파트는 6억 2,000만원, 새로 생긴 경기 E시 신도시는 약 4억 9,000만원이다. 방 세 개, 화장실 두 개, 거의 같은 평면이다. 그런데 A구는 B시의 2.7배, E시의 세 배 반이다. 서울 강남권에서는 같은 84㎡가 40억원을 넘겨 거래된 일도 있다(2026년 실거래 사례). 2026년 8월 KB 기준 서울 아파트 평균 매매가격이 16억원대이니, A구의 17억원은 서울 평균보다 조금 높은 정도다. 재원이 묻는다. "A구 집은 금으로 지었나요?" 태호가 웃으며 지도를 가리킨다. "건물은 거의 같습니다. 다른 건 그 건물이 앉아 있는 자리예요." 이 장은 '자리'의 값이 어디서 나오는지를 숫자로 푼다. 도심까지의 거리가 땅값을 정하는 원리, 출퇴근에 쓰는 시간을 돈으로 바꾸는 법, 역과 학교와 공원이 값에 얹히는 방식, 그리고 그 모두를 한 번에 쪼개 보는 헤도닉 가격 모형까지 간다.
- 지대 이론으로 도심에서 멀어질수록 집값이 내려가는 이유와, 통근 비용이 그 기울기를 정한다는 것을 설명한다.
- 통근 시간을 시간가치와 자본환원으로 집값의 차이로 바꿔 계산한다.
- 역세권, 학군, 생활 인프라, 건물 나이가 집값에 얹히는 방식을 구분한다.
- 헤도닉 가격 모형으로 한 채의 값을 속성별 몫으로 쪼개고, 모형이 설명하지 못하는 몫이 왜 남는지 말한다.
- 새 노선·학군 변화 같은 입지 변화가 완공 전에 먼저 가격에 반영되는 원리를 이해한다.
같은 84㎡, 두 배의 가격
아파트 한 채의 값은 두 부분으로 나눠 볼 수 있다. 하나는 건물이다. 콘크리트와 철근, 창호와 배관, 엘리베이터에 든 돈이다. 같은 크기의 건물을 지금 다시 짓는 데 드는 돈을 재조달원가(Replacement cost)라 하는데, 이 값은 서울에서 짓든 경기도에서 짓든 크게 다르지 않다. 자재와 인건비가 지역마다 아주 다르지는 않기 때문이다. 다른 하나는 땅이다. 아파트는 여러 세대가 땅을 나눠 가지므로, 한 세대 몫의 땅을 대지지분(Land share)이라 부른다. 같은 84㎡라도 대지지분의 값은 자리에 따라 몇 배씩 차이가 난다.
그래서 "왜 같은 평수가 두 배인가"라는 질문은 "왜 같은 넓이의 땅이 몇 배인가"라는 질문으로 바뀐다. 건물은 해마다 낡아 값이 줄지만, 좋은 자리의 땅은 낡지 않는다. 오래된 아파트가 새 아파트보다 비싼 동네가 있는 것도, 재건축 이야기가 땅값에서 출발하는 것도(12장) 여기서 나온다.
그렇다면 땅값은 무엇이 정하는가. 땅은 그 자체로 아무것도 생산하지 않는다. 땅의 값은 그 자리에서 무엇에 닿을 수 있느냐에서 나온다. 일자리에 몇 분 만에 닿는가, 역까지 몇 분을 걷는가, 아이가 어느 학교에 다니는가, 병원과 마트와 공원이 가까운가. 이 장은 이 '닿는 힘'을 하나씩 돈으로 바꿔 본다. 먼저 가장 큰 힘, 일자리까지의 거리부터 시작한다.
지대 이론: 도심에서 멀어질수록 내려가는 곡선
19세기 독일의 경제학자 튀넨은 도시 둘레의 농지가 왜 시장에서 멀수록 싼지를 설명했다. 시장까지 작물을 실어 나르는 비용이 거리에 따라 늘어나니, 멀리 있는 농부는 그만큼 땅에 덜 낼 수 있다는 것이다. 20세기 도시경제학은 작물 대신 사람을 넣었다. 도심의 일자리로 매일 출퇴근하는 가구는 도심에서 멀어질수록 통근에 시간과 돈을 더 쓰므로, 그만큼 집에는 덜 내려 한다. 각 위치에서 어떤 사용자가 땅에 낼 용의가 있는 최대 금액을 이은 선을 지불 의사 지대 곡선(Bid-rent curve)이라 한다.
사무실, 가게 같은 상업 용도는 도심 바로 옆에서 아주 높은 값을 낼 수 있지만 손님과 거래처가 도심에 몰려 있어 조금만 멀어져도 값이 빨리 떨어진다. 주거는 그보다 완만하다. 도시 바깥에서는 아파트를 지어도 건축비만큼도 값이 안 나와서 땅이 논밭이나 빈 땅으로 남는다. 각 위치에서 가장 높은 값을 내는 용도가 그 땅을 차지하므로, 도심에서 바깥으로 상업지 → 주거지 → 개발되지 않은 땅의 띠가 생긴다.
아래 그래프의 가로축은 도시를 가로지르는 40km의 직선이고, 도심 바로 옆 84㎡를 서울 핵심지 수준인 40억원으로 두었다. 도심(호박색 손잡이)과 집(빨간 손잡이)을 끌어 옮기고, 통근 비용을 바꿔 본다. 아래 띠는 각 자리를 어느 용도가 차지하는지 보여 준다.
지불 의사 지대 곡선
이 그래프에서 집값을 깎은 것은 건물이 아니라 매일 반복되는 이동 비용이다. 다만 기본값 연 400만원은 통근 시간만으로 채우기에는 큰 값이다. 다음 절의 방법으로 재면 1km 더 멀어질 때 늘어나는 통근의 시간값은 맞벌이 두 사람을 합쳐도 연 수십만원 안팎이다(시속 30km로 달려 1km에 편도 2분, 시간가치 1시간 1만 5,000원이면 한 사람 연 약 24만원). 그런데도 서울처럼 도심 옆 40억원에서 수십km 밖 수억원까지 떨어지는 곡선을 그리려면 그 몇 배가 필요하다. 남는 몫은 도심 가까이에 몰린 학교와 학원가, 문화시설, 좋은 일자리의 밀도, 그리고 그 자리를 원하는 사람에 비해 집이 모자란다는 희소성과 앞으로 더 오를 것이라는 기대가 거리와 함께 옅어지는 몫으로 읽을 수 있다. 이 몫을 하나씩 떼어 재는 방법이 이 장 뒤쪽의 헤도닉 모형이다. 그래서 같은 거리라도 통근 비용이 크면(길이 막히고, 열차가 느리고, 맞벌이 둘이 함께 멀어지면) 곡선이 가팔라지고, 교통이 빨라지면 곡선이 눕는다. 그리고 일자리가 여러 곳에 생기면 도시의 봉우리도 여러 개가 된다. 경기 B시의 집값이 서울 도심과의 거리만으로 정해지지 않는 것도 B시 안팎에 일자리가 있기 때문이다.
통근 시간을 돈으로 바꾸기
지대 곡선의 기울기 \(c\)는 대부분 시간이다. 지하철 요금이나 기름값도 있지만, 매일 왕복 두 시간을 길에서 보내는 사람이 잃는 것은 주로 시간이다. 그 시간에 일을 더 할 수도, 아이와 놀 수도, 잠을 더 잘 수도 있었다. 이렇게 시간 한 단위를 돈으로 얼마로 쳐 주는가를 시간가치(Value of time)라 한다. 교통 정책을 평가할 때도 '이 도로가 아껴 주는 시간'을 시간가치로 곱해 편익을 계산한다.
시간가치를 얼마로 잡을지에는 정답이 없다. 흔히 쓰는 기준은 세후 시급이다. 통근 시간을 줄이면 그만큼 일을 더 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직장인은 통근 시간을 줄였다고 근무 시간을 늘리지 않고, 통근 중에도 쉬거나 책을 읽을 수 있으므로 시급보다 낮게 잡는 경우가 많다. 반대로 어린아이를 맡기고 데려와야 하는 가구에게 30분은 시급보다 훨씬 비쌀 수 있다. 이 책은 교육용 기본값으로 1시간에 1만 5,000원을 쓴다. 하늘의 세후 시급(약 2만원)보다 조금 낮은 값이다.
아래 달력의 칸 하나는 8시간 근무일 하루다. 편도 통근 시간과 시간가치를 바꿔 한 해 통근이 근무일 며칠어치인지, 그것을 집값으로 바꾸면 얼마인지 본다.
1년 통근을 근무일과 집값으로
여기서 두 가지를 보았다. 하나는 통근 시간이 생각보다 큰 돈이라는 것이다. 편도 30분의 차이가 집값으로 수천만원에서 1억원 가까이 된다. 다른 하나는 이 값이 사람마다 다르다는 것이다. 시간가치가 높은 사람, 둘이 같은 방향으로 출퇴근하는 맞벌이, 아이 등하원을 맡은 사람에게 같은 거리는 더 비싸다. 시장의 집값은 이 사람들 가운데 그 집을 가장 원하는 사람, 곧 그 집을 마지막으로 사 가는 사람의 셈에 맞춰진다. 그래서 내 시간값으로 계산한 '적정 가격'과 시장 가격이 다를 수 있다. 이 차이가 이 장 끝의 하늘네 계산에서 다시 나온다.
- 평일 출근 시간대에 실제로 타 본다: 지도 앱의 예상 시간은 대개 한산한 시간 기준이다. 오전 7시 반~8시 반에 집에서 회사 문 앞까지 한 번은 직접 가 본다. 환승 통로, 배차 간격, 만원 열차를 몇 대 보내야 하는지가 드러난다.
- 두 사람 모두의 통근을 더한다: 한 사람의 통근만 보고 고르면 다른 사람의 통근이 길어진다. 아이를 맡기고 데려오는 동선까지 넣는다.
- 직장이 바뀔 가능성: 몇 년 안에 근무지가 바뀔 수 있는 직업이라면 지금 직장 하나보다 여러 일자리 중심에 두루 닿는 자리가 안전하다.
- 퇴근길과 주말: 막차 시간, 야근 뒤 택시비, 주말에 부모님 댁까지의 거리도 생활비다.
역세권: 걸어서 몇 분인가
도심까지의 시간은 열차 안에서만 쓰지 않는다. 집에서 역까지 걷는 시간, 역에서 열차를 기다리는 시간, 환승 시간이 모두 들어간다. 그래서 같은 노선의 같은 역을 쓰더라도 역에서 걸어서 3분인 집과 15분인 집의 통근 시간은 다르다. 역에서 걸어서 갈 만한 거리 안을 흔히 역세권(Transit catchment)이라 부르고, 그 안에 있다는 이유로 붙는 값을 '역세권 프리미엄'이라 한다. 걷기 싫은 날씨, 밤길의 안전, 아이와 함께 움직이는 불편까지 더해져서 역까지의 거리는 통근 시간 이상으로 값에 들어간다.
하지만 역에서 너무 멀어지면 사람들은 걷지 않고 마을버스를 탄다. 그러면 역에서 더 멀어져도 통근 시간이 천천히 늘어 값이 덜 떨어진다. 아래에서 집을 끌어 역에서 멀어지게 하고, 마을버스를 켜고 꺼 본다.
역에서 멀어지면
역세권 프리미엄은 두 갈래에서 온다. 통근 시간이 줄어드는 몫과, 걷는 것 자체의 불편이 줄어드는 몫이다. 마을버스나 자전거 같은 '첫 구간' 교통이 좋아지면 앞의 몫이 줄어 역에서 먼 집이 상대적으로 덜 손해를 본다. 그리고 같은 비율의 프리미엄도 비싼 동네에서는 원 단위로 더 크다. 이 장의 모형으로 역에서 5분이 덜 걸리면 값이 약 4% 오르는데, 그 4%가 17억원인 A구에서는 약 6,700만원, 4억 9,000만원인 E시에서는 약 1,900만원이다.
학군과 생활 인프라
일자리와 역이 '밖으로 나가는 힘'이라면, 학교와 생활 인프라는 '동네 안에서 사는 힘'이다. 아이가 있는 가구에게는 걸어서 다닐 수 있는 초등학교, 평판이 좋은 중·고등학교, 학원이 모인 거리가 집을 고르는 첫 기준이 되기도 한다. 이것을 흔히 학군이라 부른다. 원래 학군은 고등학교 배정 단위를 뜻하는 행정 용어지만, 시장에서는 '이 동네 학교와 교육 환경의 평판' 전체를 가리키는 말로 쓴다.
학군이 값에 얹히는 방식은 통근과 조금 다르다. 초등학교는 사는 곳에 따라 다닐 학교가 정해지므로(교육지원청이 정하는 통학구역), 같은 단지 안에서도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배정 학교가 갈리면 값이 달라질 수 있다. 그리고 학군의 값은 아이가 학교에 다니는 기간에 몰려 있다. 아이가 다 큰 가구에게는 거의 의미가 없고, 학령기 아이를 둔 가구에게는 아주 크다. 그래서 학군이 좋은 동네는 집값뿐 아니라 전세가도 높고, 새 학기 직전에 전세 수요가 몰린다.
생활 인프라는 대형 마트와 시장, 병원, 공원, 도서관, 문화시설처럼 매일 또는 매주 닿는 것들이다. 반대로 값을 깎는 것도 있다. 큰길의 소음, 고압선, 쓰레기 처리시설 같은 기피 시설, 조망을 가리는 건물이다. 아래 그림은 한 채의 값에 얹히는 속성들을 한데 모은 것이다.
헤도닉 가격 모형: 한 채의 값을 쪼갠다
집은 속성의 묶음이라 각 속성의 값이 직접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거래가 많이 쌓이면 거꾸로 추정할 수 있다. 다른 조건은 비슷한데 역에서 5분 더 먼 집들이 평균 몇 % 싸게 거래되었는지, 건물 나이만 다른 집들이 몇 % 차이 나는지를 통계로 뽑아내는 것이다. 이렇게 상품의 가격을 그 속성들의 값의 합으로 보고 각 속성의 값을 추정하는 방법을 헤도닉 가격 모형(Hedonic pricing model)이라 한다. 공시가격을 매길 때나 감정평가, 집값 지수를 만들 때(16장)도 같은 생각을 쓴다.
RE.hedonic)은 통근 1분에 −1.5%, 역까지 도보 1분에 −0.8%, 학군 지수 0.1에 +2.4%, 건물 나이 1년에 −1.1%(30년까지)로 둔 교육용 모형이다. \(\varepsilon\)은 모형이 설명하지 못하는 나머지다.아래 폭포 그래프는 기준 집(84㎡, 도심까지 30분, 역까지 5분, 학군 보통, 10년 차, 500세대)에서 출발해 속성을 하나씩 바꿀 때 값이 어떻게 오르내리는지를 쌓은 것이다. 지역을 고르면 그 지역의 대표 속성이 들어가고, 맨 아래에 시세(교육용)와 모형의 차이가 나온다. 하늘네 후보 세 곳 말고 비교용으로 '강남권'을 넣었다. 2026년 서울 강남권 84㎡ 거래가 40억원대에 이른 것을 본뜬 가상의 새 아파트다. 슬라이더로 속성을 바꿔 본다.
집값 폭포: 속성별 몫
폭포를 보면 '같은 평수, 두 배의 가격'의 정체가 드러난다. A구와 B시의 차이 10억 8,000만원 가운데 모형이 설명하는 것은 통근 시간, 학군, 역까지의 거리 같은 속성의 차이 약 4억 2,000만원이다. 그리고 6억 6,000만원 가까이가 모형 밖에 남는다. 이 나머지는 모형에 넣지 않은 속성(한강 조망, 대형 병원, 문화시설, 동네의 평판), 앞으로 좋아질 것이라는 기대(재건축 가능성, 개발 계획), 그리고 그 동네에 살고 싶은 사람에 비해 집이 모자란다는 희소성이 섞인 것이다. 헤도닉 모형은 값의 큰 줄기를 잘 설명하지만, 남는 몫이 왜 남는지는 말해 주지 않는다.
강남권에서는 이 남는 몫이 더 크다. 이 교육용 모형으로는 40억원 가운데 통근·학군·건물 나이 같은 속성이 설명하는 것이 14억원 남짓이고, 나머지 25억원 넘게가 모형 밖에 남는다. 그렇다고 그 25억원이 '근거 없는 값'이라는 뜻은 아니다. 이 모형의 계수는 B시에 맞춘 교육용 값이라, 서울 거래 자료로 계수를 다시 추정하면 학군이나 도심 접근성 같은 속성의 몫이 훨씬 커질 수 있다. 다만 어떤 계수를 쓰든 강남권 가격에는 속성 목록으로 다 담기 어려운 몫, 곧 오랜 학군과 학원가의 평판, 재건축과 개발에 대한 기대, 새로 지을 땅이 거의 없는 희소성이 크게 들어 있다고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 이 몫이 얼마이고 얼마나 오래갈지는 모형이 답하지 못한다. 최근 1년 사이 서울 집값이 크게 오른 것(서울시 아파트 실거래가격지수 2026년 7월 전년 동월 대비 +14.56%)도 입지 하나만이 아니라 금리, 공급, 대출 규제, 기대가 함께 움직인 결과로 보아야 하며, 그 비중은 뒤의 장들에서 하나씩 나눠 본다.
입지가 바뀔 때: 기대가 먼저 반영된다
입지는 고정되어 있지 않다. 새 철도 노선이 생기면 통근 시간이 줄고, 큰 회사나 공공기관이 옮겨 오면 일자리 중심이 생기고, 학교가 새로 열리거나 배정이 바뀌면 학군이 달라진다. 반대로 공장이 떠나거나 기피 시설이 들어서면 값이 깎인다. 그런데 이런 변화가 집값에 반영되는 시점은 변화가 실제로 일어나는 날이 아니다. 계획이 처음 알려지는 순간부터 반영되기 시작한다.
아래 그래프는 한 동네의 가상 가격 지수다. 1년 차에 새 노선 계획이 발표되고, 4년 차에 착공하고, 세로선(끌 수 있다)의 해에 개통한다. 개통되면 통근이 빨라져 집값이 15% 오른다고 가정한다. 시장이 발표 때 생각하는 '개통될 확률'을 바꾸고, 사업이 지연되거나 무산되는 경우를 골라 본다.
새 노선 발표에서 개통까지
여기서 본 것은 입지 변화의 가격 효과가 확률과 시간으로 할인되어 미리 들어온다는 것이다. 계획이 발표된 뒤에 사는 사람은 이미 기대가 반영된 값을 낸다. 그 사람이 얻는 것은 남은 불확실성이 풀릴 때의 차액뿐이고, 사업이 미뤄지거나 무산되면 손실을 본다. 학군도 마찬가지다. 새 학교 계획이나 배정 변경 소식이 돌면 그때 값이 움직이고, 학교가 문을 여는 날에는 조용하다.
그렇다면 이런 가격 변화는 어느 힘에서 왔는가. 개통 뒤에 남는 15%는 입지의 힘이다. 통근 시간이 실제로 줄었기 때문이다. 발표와 개통 사이에 오르내린 몫은 기대의 힘이다. 같은 노선을 두고도 시장의 확신이 바뀔 때마다 값이 흔들린다. 그리고 그 기대 몫이 얼마나 크게 반영되는지는 할인율, 곧 금리에 달려 있다. 개통까지 남은 7년을 할인하는 비율이 금리와 함께 움직이기 때문이다(3장). 기대가 다른 사람의 기대를 부르며 값을 개통 효과 이상으로 밀어 올리는 일은 17장에서 다룬다.
입지를 확인하는 공식 자료
입지는 눈으로 보고 발로 걸어 확인하는 것이 먼저지만, 공식 자료로 확인해야 하는 것도 있다. 2026년 기준으로 일반인이 직접 열어 볼 수 있는 자료는 다음과 같다.
| 알고 싶은 것 | 자료 | 무엇을 보나 |
|---|---|---|
| 이 근처 실제 거래 가격 |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 | 같은 단지·평형의 최근 거래가와 날짜, 층. 호가가 아닌 신고된 값이다(16장). |
| 땅의 용도와 규제 | 토지이음(토지이용계획 열람) | 용도지역, 도시계획시설(도로·공원·학교 예정지), 지구단위계획. 앞의 땅이 공원 예정지인지 상업지인지가 여기 있다. |
| 철도 계획의 단계 | 국가철도망 구축계획, 대도시권 광역교통 시행계획(국토교통부) | 노선이 법정 계획에 들어 있는지, 사업 단계가 어디인지. 예비타당성조사 결과는 기획재정부(재정경제부)·한국개발연구원 자료에서 확인한다. |
| 배정 학교 | 시·도 교육청과 교육지원청의 통학구역 안내 | 주소(동·호수)별 초등학교 배정, 중학교 배정 방식. |
| 주변 시설과 계획 | 시·군·구청 도시계획 고시, 공고 | 도로 확장, 공공시설, 기피 시설의 입지 결정. |
- 단계 확인: 그 노선·시설이 법정 계획에 들어 있는가, 예비타당성조사를 통과했는가, 착공했는가. 착공 전이면 날짜는 예상일 뿐이다.
- 토지이용계획 열람: 집 앞 빈 땅이 무엇으로 정해져 있는가(공원, 학교, 상업지, 도로). 조망과 소음이 거기서 정해진다.
- 배정 학교 확인: 동·호수 기준으로 교육지원청에 확인한다. 같은 단지라도 다를 수 있다.
- 실거래가 비교: 호재 소식 전후의 실거래가를 본다. 이미 올랐다면 내가 사는 값에는 기대가 들어 있다.
- 광고 문구: "확정", "개통 예정" 같은 말이 공식 문서의 표현과 같은지 대조한다.
하늘네 집 노트
하늘네의 후보 지역은 세 곳이다. 하늘의 직장은 서울 도심에 있고, 재원의 학교는 경기 B시 안에 있다. 두 사람의 편도 통근 시간은 서울 A구에서 하늘 25분·재원 60분, 지금 사는 경기 B시에서 하늘 55분·재원 15분, 경기 E시 신도시에서 하늘 75분·재원 35분이다. 아래는 지금 사는 B시를 기준으로, 각 지역의 84㎡ 가격 차이(회색)와 통근 시간 차이를 집값으로 환산한 값(녹색은 시간을 아끼는 쪽, 빨간색은 잃는 쪽)을 나란히 놓은 것이다. 누구의 통근을 셈에 넣을지, 시간가치와 할인율을 바꿔 본다.
세 지역의 가격 차이와 '시간값'
A구의 10억 8,000만원 가운데 하늘네의 '시간값'은 얼마인가
태호는 지도 위 세 곳에 핀을 꽂고, 가격 대신 시간부터 적었다. 서울 A구에서는 하늘이 편도 25분, 재원이 60분, 경기 B시에서는 55분과 15분, 경기 E시에서는 75분과 35분이다. 하루 왕복으로 더하면 하늘네 두 사람의 통근은 A구 170분, B시 140분, E시 220분이다. 서울 도심에 가까운 A구가 하늘네 전체로는 B시보다 하루 30분을 더 길에서 보낸다. 재원의 직장이 B시에 있기 때문이다.
이 장의 방법으로 시간을 돈으로 바꾸면(시간가치 1시간 1만 5,000원, 연 240일, 할인율 4%, 교육용 가정) A구가 하늘에게 아껴 주는 시간은 한 해 240시간, 약 360만원이고 집값으로 약 9,000만원이다. A구와 B시의 가격 차이 10억 8,000만원의 약 8%다. 재원까지 넣으면 A구의 시간값은 약 −4,500만원이 된다. E시는 B시보다 1억 3,000만원 싸지만 두 사람의 통근이 하루 80분 늘어 시간값이 약 −1억 2,000만원이다. 헤도닉 모형으로 보면 A구의 모형 가격은 약 10억 4,000만원(통근 +7,700만원, 학군 +7,900만원, 건물 나이 −1억 4,000만원 등)이고, 약 6억 6,000만원(시세의 39%)이 모형 밖에 남는다. A구의 값을 정하는 사람은 하늘네가 아니라, 두 사람 모두 도심으로 출근하거나 그 학군과 동네를 강하게 원하는 다른 가구다.
하늘은 "그럼 A구는 우리한테 비싼 거네요"라고 말했다가 고쳐 말한다. "아니, 우리 셈으로는 그 값이 안 나온다는 거죠." 태호가 고개를 끄덕인다. "맞습니다. 비싸다, 싸다가 아니라 누구 셈이냐의 문제예요. 그리고 재원 씨 직장이 B시에 있는 한, A구는 하늘 씨 한 사람의 시간을 사고 재원 씨의 시간을 파는 거래입니다." 재원은 교사라 몇 년마다 학교를 옮길 수 있지만, 같은 교육청 안에서 옮기므로 B시 둘레를 크게 벗어나기 어렵다. 이 제약이 후보지를 좁힌다. 다만 어디에 살지는 아직 정하지 않았다. 숫자로 정한 것은 '시간의 값'뿐이고, 가격이 금리와 대출, 세금에 따라 어떻게 달라지는지는 아직 보지 않았다.
핵심 정리
- 같은 84㎡의 값 차이는 대부분 건물이 아니라 땅(자리)에서 나온다. 건물은 낡지만 좋은 자리의 땅은 낡지 않는다.
- 지대 이론: 도심에서 멀어질수록 통근 비용만큼 집값이 내려간다. 1km당 연 통근 비용 \(c\)를 할인율 \(i\)로 나눈 \(c/i\)가 곡선의 기울기이고, 교통이 빨라지면 곡선이 눕고 도시가 넓어진다.
- 통근 시간은 시간가치로 돈이 된다. 편도 30분의 차이는 한 사람 기준으로 집값 수천만원에서 1억원 가까이다. 시간가치는 사람마다 달라서, 시장 가격은 그 집을 가장 원하는 가구의 셈에 맞춰진다.
- 역세권 프리미엄은 통근 시간과 걷는 불편 두 갈래에서 온다. 같은 비율의 프리미엄도 비싼 동네에서는 원 단위로 더 크다.
- 헤도닉 가격 모형은 한 채의 값을 통근·역·학군·건물 나이 같은 속성의 몫으로 쪼갠다. 모형 밖에 남는 몫에는 빠진 속성, 기대, 희소성이 섞여 있다.
- 새 노선·학교 같은 입지 변화는 개통·개교 날이 아니라 계획이 알려질 때부터 확률과 시간으로 할인되어 가격에 들어온다. 그래서 지연·무산 소식이 하락을 만든다.
확인 퀴즈
도심까지 1km 멀어질 때마다 한 가구의 통근 비용이 한 해 80만원 늘어난다. 할인율이 4%라면, 지대 이론으로 본 1km당 집값 차이는 대략 얼마인가?
헤도닉 가격 모형으로 서울 A구 집값을 설명했더니 시세와 모형 가격 사이에 6억원 남짓이 남았다. 이 차이에 대한 설명으로 가장 알맞은 것은?
어느 동네에 새 지하철역 계획이 발표된 뒤 7년이 지나 실제로 개통했다. 다른 조건이 같다면 집값은 언제 가장 크게 움직였을 가능성이 높은가?
맞벌이 부부 중 한 사람은 서울 도심, 다른 한 사람은 경기 B시로 출근한다. 서울 A구로 이사하면 도심 출근자의 통근은 하루 60분 줄고 B시 출근자의 통근은 하루 90분 는다. 이 부부의 입장에서 맞는 말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