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버리지와 위험
하늘의 회사 동료는 3년 전 자기 돈 1억 5,000만원에 대출 4억원을 보태 5억 5,000만원짜리 아파트를 샀다. 점심시간마다 그는 "집값이 10%만 올라도 내 돈은 거의 40%가 는다"고 말한다. 옆자리의 다른 동료는 2021년에 비슷하게 샀다가 집값이 내린 뒤 이자를 감당하지 못해 집을 내놓았는데, 몇 달째 팔리지 않는다. 두 사람은 같은 지렛대를 쥐었다. 한 사람에게는 수익을 키우는 지렛대였고, 다른 사람에게는 손실을 키우는 지렛대였다. 9장에서 하늘네가 은행에서 얼마를 빌릴 수 있는지 계산했다면, 이 장은 그 돈을 빌려도 되는지를 묻는다. 빚이 수익과 손실을 몇 배로 키우는 원리, 대출과 전세 보증금이라는 두 가지 빚의 차이, 이익과 손실이 대칭이 아닌 이유, 그리고 끝내 빚을 갚지 못했을 때 벌어지는 일을 숫자로 따라간다.
- 자기자본수익률(ROE)과 레버리지 배수를 계산하고, 집값 변화가 내 돈에 몇 배로 들어오는지 설명한다.
- 은행 대출과 전세 보증금(갭투자)이라는 두 가지 빚의 같은 점과 다른 점을 구분한다.
- 이자와 보유비용은 확정되어 있고 집값은 불확실하다는 비대칭을 손익분기 상승률과 확률로 표현한다.
- 수천 개의 가상 경로로 손실 확률과 자기자본 전액 손실 확률을 읽고, 변동성·LTV·기간이 그 확률을 어떻게 바꾸는지 본다.
- 금리·공실·하락이 겹칠 때의 현금흐름, 유동성 위험, 연체에서 경매·배당까지의 일반적 흐름을 설명한다.
- 비상금과 금리 스트레스 테스트로 감당 가능한 레버리지의 기준을 세운다.
같은 10%, 다른 결과: 레버리지 배수
집값이 10% 올랐다는 뉴스는 모든 집주인에게 같은 소식처럼 들린다. 하지만 그 10%가 내 돈에 몇 %로 들어오는지는 사람마다 다르다. 집값 6억 2,000만원짜리 집을 현금만으로 산 사람에게 10%는 그대로 10%다. 같은 집을 자기 돈 2억 4,000만원과 대출 3억 8,000만원으로 산 사람에게는 집값 상승분 6,200만원이 자기 돈 2억 4,000만원 위에 얹힌다. 내 돈 기준으로는 약 26%다.
이 증폭의 크기를 재는 숫자가 레버리지 배수(Leverage multiple)다. 자산 가격을 내 돈(자기자본)으로 나눈 값으로, 내 돈 1원이 몇 원짜리 자산을 움직이는지를 뜻한다. 내 돈이 집값의 39%라면 배수는 약 2.6배이고, 집값이 1% 움직일 때 내 돈은 약 2.6% 움직인다. 1장의 '레버리지 확대경'에서 이 선의 기울기를 보았다. 이번에는 집의 재무상태표를 직접 쪼개 본다.
아래 왼쪽 막대는 산 날의 집이다. 아래쪽 빨간 부분이 대출, 위쪽 청록 부분이 내 돈이다. 두 부분의 경계에 달린 손잡이를 위아래로 끌어 대출 비율을 바꾸고, 슬라이더로 집값을 움직여 오른쪽 막대에서 내 돈이 어떻게 변하는지 본다.
집값 막대를 대출과 내 돈으로 쪼개기
배수만 놓고 보면 레버리지는 대칭이다. 집값이 10% 오르면 내 돈이 25.8% 늘고, 10% 내리면 25.8% 준다. 그런데 빚에는 대가가 있다. 은행 대출에는 이자가 붙고, 집을 가지고 있으면 보유세와 수선비가 든다. 이것을 넣은 내 돈의 수익률이 자기자본수익률(Return on equity, ROE)이다.
이 식으로 하늘네가 C아파트를 산다고 가정해 보자. 대출 금리를 연 4%로 두면 이자가 한 해 1,520만원이다. 집값이 그대로여도 내 돈은 이자만큼, 약 6.3% 줄어든다. 집값이 20% 오르면 내 돈은 약 45% 늘지만, 20% 내리면 약 58% 준다. 같은 20%인데 손실 쪽이 13%p 더 크다. 레버리지는 대칭인 지렛대에 한쪽으로 기운 추를 단 것과 같다. 이 기울기가 이 장의 주제다.
대출 레버리지와 보증금 레버리지
한국에서 집을 살 때 쓸 수 있는 빚은 두 가지다. 하나는 은행의 주택담보대출이고, 다른 하나는 세입자의 전세 보증금이다. 전세를 낀 채로 집을 사면 집값과 보증금의 차이, 곧 갭(Gap)만 내 돈으로 내면 된다. 이렇게 사는 것을 갭투자라 한다. 업계에서는 거의 자기 돈 없이 여러 채를 사는 경우를 '무피투자'라고도 부르는데, 갭이 0에 가깝다는 뜻이다.
보증금은 이자가 없는 빚이다. 세입자는 이자 대신 그 집에 산다. 그래서 갭투자자의 재무상태표에는 이자 비용이 없고, 레버리지 배수는 대출로 산 사람보다 오히려 클 때가 많다. 대신 보증금은 다른 방식으로 대가를 받아 간다. 만기가 오면 갚아야 한다는 것이다.
갭투자자가 무서워하는 것은 이자가 아니라 만기다. 2년 뒤 새 세입자를 들일 때 전세 시세가 내려 있으면, 집주인은 나가는 세입자에게 원래 보증금을 다 돌려줘야 하는데 새 세입자에게서는 그보다 적게 받는다. 그 차이는 집주인이 현금으로 메워야 한다. 이것이 역전세(Reverse jeonse)다(5장). 아래에서 남궁현의 조건(집값 6억 8,000만원, 전세가율 약 66%)으로 2년 뒤를 움직여 본다.
갭투자의 2년: 이자는 없고 만기는 있다
배수는 전세가율 하나로 정해진다. 보증금이 집값의 \(j\)이면 배수는 \(1/(1-j)\)다. 남궁현의 66%는 약 2.9배다. 2026년 서울 고가 지역은 사정이 다르다. KB부동산 기준 서울 아파트 전세가율은 2026년 1월 50% 아래로 내려왔고 송파·용산·서초는 40% 안팎이다. 서울 강남권에서 84㎡가 40억원대에 거래되는 집을 전세가율 40%로 끼고 사면 전세는 16억원, 갭은 24억원이고 배수는 40억 ÷ 24억 ≈ 1.67배다. 집값이 10% 오르면 갭에는 약 17%가 들어온다. 66%일 때의 약 29%, 90%일 때의 100%와 비교하면 지렛대가 거의 없다. 대신 처음부터 24억원의 내 돈이 필요하다. 고가 지역의 갭투자는 '적은 돈으로 크게'가 아니라 '큰 돈으로 조금 덜'에 가깝고, 서울 전역이 토지거래허가구역이라 실거주 의무 때문에 이런 매수 자체가 막혀 있기도 하다(15장).
갭투자의 손익은 대출로 산 경우와 같은 식을 따른다. 집값 변화가 배수만큼 커져서 내 돈에 들어온다. 다른 점은 시간표다. 대출은 매달 조금씩 대가를 치르니 문제가 생겨도 천천히 드러난다. 보증금은 2년 동안 아무 일도 없다가 만기 한 날에 목돈을 요구한다. 그리고 그날은 하필 집값과 전세가가 함께 내린 날, 곧 집을 팔기도 어렵고 돈을 빌리기도 어려운 날인 경우가 많다. 보증금 레버리지의 위험은 '이자율'이 아니라 '만기의 타이밍'에 들어 있다.
이 위험은 집주인만의 것이 아니다. 집주인이 차액을 메우지 못하면 세입자가 보증금을 제때 돌려받지 못한다. 집값이 보증금 아래로 내려간 깡통전세에서는 세입자가 손실의 일부를 떠안는다. 갭투자자의 높은 배수는 사실 세입자의 돈으로 만들어진 것이고, 그 배수가 손실로 바뀔 때 세입자도 그 지렛대 끝에 서 있다. 세입자가 자기 보증금을 지키는 법은 7장에서 다뤘다.
확정된 비용, 불확실한 집값
앞 절의 식에서 분자를 다시 보자. 집값 변화 \(gP\)는 오를지 내릴지 모르는 값이다. 반면 이자 \(rD_L\)과 보유비용 \(C\)는 거의 확정된 값이다. 대출 약정서에 금리가 적혀 있고, 보유세는 해마다 고지서가 온다. 변동금리라면 이자도 움직이지만, 적어도 0이 되지는 않는다. 이익은 불확실한데 비용은 확실하다. 이것이 레버리지 손익의 비대칭이다.
이 비대칭을 숫자 하나로 줄이면 손익분기 상승률(Break-even growth)이 된다. 해마다 확정된 비용을 집값 상승으로 메우려면 집값이 한 해 몇 % 올라야 하는가를 뜻한다.
하늘네가 대출 3억 8,000만원(금리 4%)으로 사면 이자 1,520만원에 보유세·수선비 약 360만원이 더해져 한 해 비용이 약 1,880만원이다. 집값 6억 2,000만원의 약 3.0%다. 아끼는 주거비를 빼고 순수하게 투자로만 보면 집값이 한 해 3% 넘게 올라야 본전이다. 아래 그래프에서 빨간 선은 쌓여 가는 확정 비용이고, 청록 띠는 같은 기간 집값 변화가 떨어질 수 있는 범위(가운데 80%)다. 시간축 손잡이를 끌어 몇 년 뒤를 볼지 고르고, 금리와 집값의 흔들림(변동성)을 바꿔 본다.
빨간 선은 확실하고, 청록 띠는 넓다
그래프의 빨간 선은 기울기가 정해진 직선이다. 시간이 갈수록 비용은 정직하게 쌓인다. 집값 띠는 시간이 갈수록 넓어진다. 길게 보유할수록 연평균 상승률이 비용을 넘을 가능성은 조금씩 커지지만, 그 사이 띠의 아래쪽 끝을 지나는 해가 있으면 그 해를 견뎌야 한다. 레버리지는 '결국 오른다'가 아니라 '오르기 전까지 버틸 수 있는가'의 문제가 된다.
수천 개의 가상 경로
앞 그래프의 띠는 집값이 떨어질 수 있는 범위를 보여 줬다. 그 범위 안에서 실제로 어떤 일이 얼마나 자주 일어날지는 많은 경우를 직접 굴려 보면 더 잘 보인다. 아래 시뮬레이터는 집값이 해마다 무작위로 오르내리는 가상의 미래 3,000개를 만들고, 각 미래에서 보유 기간이 끝난 날 내 돈이 몇 %가 되었는지를 막대그래프(히스토그램)로 쌓는다. 막대 하나가 '이만큼 벌거나 잃은 미래의 수'다.
세 가지를 바꿔 본다. 집값이 얼마나 크게 흔들리는가(변동성), 얼마나 빌렸는가(LTV), 얼마나 오래 갖고 있는가(기간). 체크박스는 실거주라서 아끼는 주거비(같은 집 전세 4억원을 법정 전환율 상한 5%로 환산한 한 해 2,000만원)를 수익에 넣을지 정한다.
3,000개의 미래에서 내 돈은
히스토그램은 레버리지의 두 얼굴을 한 그림에 담는다. 오른쪽 꼬리는 길다. 대출을 많이 낄수록 크게 버는 미래가 늘어난다. 왼쪽 꼬리도 길어진다. 그리고 왼쪽 끝에는 넘을 수 없는 벽, 내 돈 −100%가 있다. 평균만 보면 레버리지를 키울수록 수익이 커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가구에게 중요한 것은 평균이 아니라 '나쁜 쪽 미래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가'다. 평균은 3,000개의 미래를 다 산 사람의 숫자이고, 실제 가구는 그중 하나만 산다.
금리·공실·하락이 겹칠 때
지금까지는 집값의 변화를 '나중에 팔 때의 숫자'로 보았다. 하지만 레버리지가 가구를 무너뜨리는 것은 대개 장부상의 손실이 아니라 현금의 부족이다. 집값이 내려도 팔지 않고 버틸 수 있다면 장부상 손실은 확정되지 않는다. 문제는 버티는 동안 매달 나가는 돈이 들어오는 돈보다 많을 때다.
두 가지 투자자를 나란히 놓는다. 왼쪽은 5억원짜리 집을 대출 2억 5,000만원을 끼고 사서 보증금 5,000만원, 월세 130만원에 세를 준 월세 투자자다. 오른쪽은 같은 5억원짜리 집을 전세 3억 5,000만원을 끼고 산 전세 투자자다. 세 가지 충격을 하나씩, 그리고 함께 넣어 본다. 금리가 오르고, 세입자가 나간 뒤 몇 달씩 빈집이 되고(공실(Vacancy)), 집값과 전세·월세 시세가 내린다.
세 가지 충격이 겹칠 때의 현금
세 충격은 따로 오면 견딜 만하다. 금리 2%p는 한 달 30만원 남짓이고, 공실 석 달은 400만원이다. 하지만 이 셋은 따로 오지 않는 경향이 있다. 금리가 오르면 집을 사려는 사람과 비싼 월세를 낼 사람이 함께 줄고, 새 아파트 입주가 몰리면 공실과 시세 하락이 같이 온다(4장). 월세 투자자는 매달 조금씩, 전세 투자자는 만기에 한꺼번에 같은 충격을 맞는다. 모양만 다를 뿐 둘 다 현금이 바닥나는 순간이 위험이다.
그렇다면 이런 하락은 어디서 왔을까. 남궁현이 2021년에 6억 8,000만원에 산 C아파트가 지금 6억 2,000만원인 이유를 다섯 힘으로 나눠 보면, 가장 큰 몫은 금리다. 2021년은 기준금리가 역사적으로 낮던 시기였고, 그 뒤 몇 년 사이 금리가 빠르게 올랐다. 같은 임대료의 값이 내려가고(3장) 대출로 살 수 있는 금액이 줄었다(9장). 여기에 '계속 오를 것'이라는 기대가 꺾이면서 하락을 키웠고(17장), 지역에 따라서는 입주 물량이 시세를 더 눌렀다. 레버리지 투자자에게 금리는 두 번 아프다. 이자가 늘고, 집값이 내린다. 위 시뮬레이터의 세 슬라이더가 실제로는 한 줄에 묶여 움직이는 이유다.
팔고 싶어도 못 판다: 유동성 위험
주식은 오늘 팔면 이틀 뒤 돈이 들어온다. 집은 내놓은 날 팔리지 않는다. 매수자가 나타나고, 가격을 맞추고, 계약하고, 잔금을 치르기까지 몇 달이 걸린다. 시장이 얼어붙으면 몇 달이 반년, 1년이 된다. 원하는 때에 제값에 팔 수 없을 위험을 유동성 위험(Liquidity risk)이라 한다.
빨리 팔고 싶으면 값을 깎아야 한다. 시세보다 싸게 내놓은 매물을 급매라 한다. 기다리면 덜 깎아도 되지만, 기다리는 동안 이자와 관리비가 나가고 침체기라면 시세 자체가 내린다. 아래 그래프의 가로축은 '몇 개월 안에 팔 것인가'다. 손잡이를 끌어 매도 시점을 고르고, 시장 분위기와 매달 나가는 보유비용을 바꿔 본다.
빨리 팔까, 기다릴까
유동성 위험은 레버리지와 만나면 성질이 바뀐다. 빚이 없는 사람은 시장이 얼면 기다리면 된다. 빚이 큰 사람은 기다리는 비용이 크고, 은행이나 세입자가 정한 날짜(대출 만기, 전세 만기)가 있어 기다릴 수 없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하락기에는 '팔고 싶은 사람'보다 '팔아야 하는 사람'이 가격을 정한다. 집을 사고팔 때 드는 비용(8장)까지 더하면, 집은 짧게 갖고 빨리 빠져나오기에 가장 불리한 자산이다.
대출을 못 갚으면 생기는 일
현금이 바닥나 대출 상환을 미루기 시작하면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많은 사람이 막연히 '집이 넘어간다'고만 안다. 실제 과정은 몇 단계로 이루어지고, 단계마다 시간과 비용이 붙는다. 아래는 은행 주택담보대출을 갚지 못했을 때의 일반적인 흐름이다. 세부 기준은 대출 약정서와 금융회사의 약관, 법원 절차에 따라 다르다.
① 연체. 약정한 날에 이자나 원리금을 내지 못하면 연체가 시작된다. 은행은 밀린 금액에 약정 금리보다 높은 연체이자율을 매긴다. 은행권 가계대출의 연체이자율은 대체로 약정 금리에 연 3%p 안팎의 가산금리를 더한 수준이고, 금융회사마다 따로 상한을 둔다(약관 확인 필요). 연체가 며칠 이어지면 신용평가에 연체 정보가 기록되기 시작한다.
② 기한의 이익 상실. 대출을 받은 사람은 약정한 만기까지 나눠 갚을 권리를 가진다. 이 권리를 기한의 이익(Benefit of time)이라 한다. 연체가 일정 기간 이어지면 이 권리를 잃는다. 은행 약관은 대체로 주택담보대출의 이자를 2개월 넘게 밀리거나 분할상환금을 3회 연속 밀리면 기한의 이익을 잃는 것으로 정하고 있고, 은행은 그 전에 미리 알려야 한다(2014년 약관 개정 이후 기준, 금융회사 약관 확인 필요). 기한의 이익을 잃으면 30년에 걸쳐 갚기로 한 남은 원금 전체를 당장 갚아야 하고, 연체이자도 밀린 회차가 아니라 잔액 전체에 붙는다. 한 달 이자 몇십만원을 밀린 것이 한 달 몇백만원의 연체이자로 바뀌는 지점이다.
③~⑥ 경매. 그래도 갚지 못하면 은행은 근저당권을 근거로 법원에 경매를 신청한다. 법원은 경매 개시를 결정해 등기부에 적고, 감정평가로 집값을 매기고, 입찰 날짜(매각기일)를 공고한다. 첫 입찰의 최저가는 대개 감정가이고, 아무도 응찰하지 않으면(유찰) 법원마다 정한 비율(대개 20~30%)만큼 최저가를 낮춰 다시 연다. 낙찰가가 감정가의 몇 %인지를 낙찰가율(Winning bid ratio)이라 하는데, 시장이 좋을 때는 100% 가까이, 나쁠 때는 그보다 한참 낮아진다.
⑦ 배당. 낙찰 대금은 정해진 순서대로 나눈다. 아래 그림처럼 위에서 부은 물이 컵을 하나씩 채우고 넘쳐야 다음 컵으로 가는 구조다. 남은 돈이 있으면 원래 집주인에게 돌아가고, 모자라면 뒤 순서의 채권자가 못 받는다. 집주인에게 중요한 사실은 이것이다. 낙찰 대금으로 대출을 다 갚지 못하면 남은 빚은 사라지지 않는다. 집은 넘어갔는데 빚은 남는다.
아래 시뮬레이터는 하늘네가 C아파트를 대출 3억 8,000만원으로 샀다가 갚지 못하게 되었다고 가정한다. 낙찰가율과 집값 하락, 연체부터 배당까지 걸린 기간을 바꿔 집주인에게 무엇이 남는지 본다. 아래 막대는 같은 시점에 일반 매매로 먼저 팔았을 때다.
경매로 넘어가면 남는 것
경매는 집주인에게 가장 비싼 출구다. 낙찰가는 대개 시세보다 낮고, 기다리는 동안 연체이자가 잔액 전체에 붙고, 절차 비용이 빠진다. 같은 집을 일반 매매로 먼저 팔면 이 세 가지를 대부분 피할 수 있다. 그래서 상환이 어려워질 조짐이 보이면 연체가 시작되기 전, 늦어도 기한의 이익을 잃기 전에 움직여야 한다. 은행에 상환 유예나 기간 연장을 상담하고, 신용회복위원회 같은 공적 채무조정 제도를 알아보고, 필요하면 일반 매매로 먼저 파는 것을 검토한다. 그림 2의 ①과 ② 사이가 대응할 수 있는 마지막 시간이다.
- 금리 방식과 변동 주기: 고정인지 변동인지, 혼합형이라면 몇 년 뒤 변동으로 바뀌는지, 변동이면 몇 개월마다 어떤 지표에 따라 바뀌는지.
- 연체이자율: 약정 금리에 몇 %p를 더하는지, 상한이 얼마인지.
- 기한의 이익 상실 사유: 몇 개월(몇 회) 연체하면 잃는지, 연체 말고 다른 사유(다른 대출 연체, 담보 가치 하락, 실거주 약정 위반 등)는 무엇인지.
- 중도상환수수료: 몇 년 안에 갚으면 얼마인지. 급히 팔아 갚아야 할 때의 비용이다.
- 채권최고액과 근저당 설정: 등기부에 적힐 채권최고액(대개 대출 원금의 110~120%)이 얼마인지. 나중에 세를 놓으면 세입자가 이 숫자를 본다(7장).
감당 가능한 레버리지의 기준
그렇다면 얼마까지 빌려도 되는가. 은행이 정하는 한도(LTV·DSR, 9장)는 '은행이 돈을 돌려받을 수 있는가'를 기준으로 한 숫자다. 가구가 스스로 정해야 할 기준은 다르다. '나쁜 일이 겹쳐도 집을 지키며 생활할 수 있는가'다. 흔히 쓰는 기준은 세 가지다.
- 비상금. 집을 사고 나서도 몇 달 치 생활비와 원리금을 낼 수 있는 현금이 남아 있는가. 흔히 6개월 치를 기준으로 삼는다. 잔금 날 통장이 0이 되는 계획은 첫 번째 충격에 무너진다.
- 금리 스트레스 테스트. 지금 금리에 2~3%p를 더해도 원리금을 낼 수 있는가. 정부가 대출 한도를 계산할 때 쓰는 스트레스 DSR이 같은 생각이다. 2026년 기준 수도권·규제지역 주담대에는 한도 계산에 최소 3%p의 가산금리를 얹는다.
- 소득 충격. 맞벌이라면 한 사람의 소득이 1년쯤 끊기거나(육아휴직, 이직, 질병) 크게 줄어도 버틸 수 있는가.
마지막 시뮬레이터는 이 세 가지를 한꺼번에 시험한다. 하늘네가 C아파트(6억 2,000만원)를 산다고 하고, 대출 규모를 고른 뒤 금리·소득·집값에 충격을 준다. 대출을 줄이면 원리금이 줄지만 그만큼 자기 돈을 더 넣어야 해서 비상금이 줄어든다. 대출을 늘리면 비상금은 남지만 원리금이 커진다. 위쪽 막대는 한 달의 돈, 아래쪽 선은 그 상태가 이어질 때 비상금이 줄어드는 길이다.
하늘네 스트레스 테스트
이 시뮬레이터에 정답은 없다. 같은 집, 같은 소득이어도 대출을 더 받아 현금을 남기는 쪽과 대출을 줄이고 현금을 털어 넣는 쪽은 서로 다른 위험을 진다. 앞쪽은 금리에 약하고, 뒤쪽은 갑작스러운 지출에 약하다. 중요한 것은 시뮬레이터의 슬라이더를 끝까지 밀었을 때 '그래도 집을 지킬 수 있는 지점'이 어디인지를 미리 아는 것이다. 그 지점을 넘는 충격이 올 확률은 0이 아니다. 그 확률을 받아들일지는 가구가 정한다.
레버리지가 언제나 나쁜 것도 아니다. 집값의 대부분을 저축으로 모으려면 수십 년이 걸린다. 그동안 남의 집에 살며 주거비를 내고 이사를 반복하는 것도 비용이고 위험이다. 빚을 내 집을 사는 것은 그 시간을 사는 일이기도 하다. 이 장의 질문은 '빚을 내느냐'가 아니라 '어느 크기의 빚을, 어떤 대비와 함께 지느냐'다. 사는 쪽과 빌리는 쪽의 총비용은 20장에서, 하늘네의 자금 계획은 21장에서 다룬다. MoneyBook의 대출 상환의 구조는 원리금이 어떻게 줄어드는지를, 집: 월세·전세·매매는 레버리지의 첫 그림을 보여 준다.
하늘네 집 노트
자기 돈 2억 4,000만원, 집값 ±20%는 내 돈의 몇 %인가
9장에서 하늘네는 C아파트(6억 2,000만원)를 산다면 대출 약 3억 8,000만원이 필요하다는 것을 확인했다. 자기 돈은 약 2억 4,000만원이다. 이 책의 모델로 계산하면 레버리지 배수는 약 2.58배다. 금리를 연 4%로 두고 1년 뒤를 보면, 집값이 20% 오를 때 내 돈은 약 45.3% 늘고(집값 +1억 2,400만원, 이자 −1,520만원), 20% 내릴 때 약 58.0% 준다. 집값이 그대로여도 이자만큼 6.3%가 줄어든다. 하늘이 "오르면 반, 내리면 반"이라고 생각했던 숫자는 사실 "오르면 45%, 내리면 58%"였다. 실거주라면 같은 집 전세를 연 5%로 환산한 아끼는 주거비(한 해 약 2,000만원)가 이자를 넘어서 이 계산을 돕는다. 그래서 하늘네가 이 집에 사는 동안은 '빚을 내 산 투자자'보다 덜 불리하다. 다만 집값 하락과 이자는 그대로 남는다.
태호는 집주인 남궁현의 숫자도 같은 식으로 적어 보인다(개인 정보는 빼고, 등기부와 계약서에 이미 나온 숫자만). 2021년 6억 8,000만원에 전세 4억 5,000만원을 끼고 샀으니 갭은 2억 3,000만원, 배수는 약 2.96배다. 보증금에는 이자가 없으니 집값이 20% 올랐다면 내 돈은 약 59% 늘었을 것이다. 실제로는 집값이 6억 2,000만원으로 약 8.8% 내렸고, 그것만으로 갭의 약 26%(6,000만원)가 사라졌다. 여기에 2025년 재계약 때 보증금을 4억원으로 낮추며 5,000만원을 현금으로 돌려줬다. 그는 모두 2억 8,000만원을 넣었고, 지금 집값에서 보증금을 뺀 몫은 2억 2,000만원이다. 이자는 한 푼도 내지 않았는데 손실은 이자 낸 사람 못지않다. 보증금 레버리지의 대가는 이자가 아니라 하락기의 현금이었다. 태호는 덧붙인다. "남궁현 씨가 그 5,000만원을 못 구했다면, 그 위험은 하늘네 보증금으로 넘어왔을 겁니다."
하늘은 마지막으로 묻는다. "만약 우리가 샀다가 대출을 못 갚게 되면요?" 태호는 그림 2의 흐름을 짚어 준다. 연체가 시작되면 연체이자가 붙고, 이자를 대략 두 달 넘게 밀리면 기한의 이익을 잃어 남은 원금을 한꺼번에 갚아야 하며, 그래도 갚지 못하면 은행이 경매를 신청한다. 낙찰가가 빚보다 적으면 집을 잃고도 빚이 남는다. 그 전에 일반 매매로 파는 편이 거의 언제나 낫다. 재원이 스트레스 테스트를 돌려 본다. 금리 4%, 대출 3억 8,000만원이면 한 달 약 100만원이 남고 비상금은 약 2,860만원이다. 금리가 7%가 되고 둘 중 한 사람의 소득이 1년 끊기면 비상금은 1년을 못 간다.
핵심 정리
- 레버리지 배수는 집값 ÷ 내 돈이다. 배수가 2.6배면 집값 1%가 내 돈 2.6%로 들어온다. 이익과 손실이 같은 배수로 커진다.
- 자기자본수익률(ROE)은 (집값 변화 + 임대수입 − 이자 − 보유비용) ÷ 내 돈이다. 이자와 보유비용은 집값이 그대로여도 나가므로 손실 쪽이 이익 쪽보다 크다.
- 전세 보증금은 이자 없는 빚이라 갭투자의 배수는 대출보다 클 수 있다. 대가는 만기다. 전세 시세가 내리면 집값이 내린 바로 그때 현금으로 차액을 돌려줘야 하고, 메우지 못하면 위험이 세입자에게 넘어간다.
- 비용은 확정되어 있고 집값은 불확실하다. 손익분기 상승률(이자 + 보유비용 − 임대수입) ÷ 집값보다 덜 오르면 내 돈이 준다. 레버리지는 '결국 오르는가'보다 '오르기 전까지 버틸 수 있는가'의 문제다.
- 금리 상승, 공실, 시세 하락은 함께 오는 경향이 있다. 레버리지가 가구를 무너뜨리는 것은 장부상 손실보다 현금 부족이고, 집은 급히 팔수록 값을 깎아야 하는 유동성이 낮은 자산이다.
- 대출을 못 갚으면 연체 → 기한의 이익 상실 → 경매 신청 → 매각 → 배당의 순서로 진행된다. 낙찰가가 빚보다 적으면 남은 빚은 그대로 남는다. 기한의 이익을 잃기 전에 상담·채무조정·일반 매매를 검토한다.
- 감당 가능한 레버리지는 은행 한도가 아니라 비상금(흔히 6개월 치), 금리 +2~3%p 스트레스, 소득 충격을 견디는가로 정한다.
확인 퀴즈
6억원짜리 집을 내 돈 1억 5,000만원과 대출 4억 5,000만원으로 샀다. 이자를 무시하면 집값이 10% 오를 때 내 돈은 몇 % 늘어나는가?
전세를 낀 갭투자는 보증금에 이자가 없는데도 위험하다고 하는 가장 큰 이유는?
주택담보대출에서 '기한의 이익을 상실한다'는 것의 뜻으로 가장 알맞은 것은?
대출 잔액과 연체이자를 합쳐 4억원인 집이 경매에서 3억 2,000만원에 팔렸다. 경매 비용과 다른 채권자는 없다고 할 때 원래 집주인에게 일어나는 일은?